◆'해방' 아닌 '분노'의 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기업이 받는 차별을 해소하겠다면서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오늘은 미국의 해방일이다. 이제 우리가 번영할 차례"라며 나라별 상호관세 세율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이 27개 회원국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 161개 국가 및 지역에 관세를 매겼다. 세율이 높은 국가가 많은 곳은 유럽과 아시아였다. 10%를 초과하는 고율관세가 매겨진 지역 및 국가는 총 67곳이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EU 27개국과 스위스(31%), 세르비아(37%), 노르웨이(15%)까지 총 30개국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각각 18개국과 11개국이었다. 중동에선 시리아(41%), 요르단(20%), 이스라엘(17%) 등 3개국이, 미주에선 니카라과(18%)와 프랑스령 생피에르미클롱(50%) 등 2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나우루(30%), 바누아투(22%) 등 태평양 섬나라 두 곳과 노퍽섬(29%)도 상호관세 부과 대상이 됐다. 러시아는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
메가톤급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세계 각국은 "모두가 피해를 볼 것"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일반 시민 관점에서 보면 오늘은 '인플레이션의 날'이다"면서 미국의 관세를 '부당하며 불법적이며 불균형적 조치'로 규정했다.
유럽은 미국의 서비스 수출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금융 서비스, 문화 콘텐트, 클라우드 등을 디지털로 수출하면서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다. 유럽이 이런 미국의 서비스 부분을 겨냥해 칼을 휘두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관세 전쟁'에 나선 이유
트럼프 '관세 전쟁'의 목적은 대략 무역적자 감축, 제조업 부활, 국가부채 해소, 중국 견제 등에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가 다른 국가들의 불공정 무역 관행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적자는 줄어들 것이고 미국 내 제조업이 보호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트럼프의 이런 구상은 실제 효과를 보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지난 3월 24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대미투자를 발표하자 트럼프는 "이 투자야말로 관세가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내는지를 보여준다"며 자평하기도 했다.
이와함께 관세 수입은 감세 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를 보충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통해 재정이 강화되면 36조달러(약 5경2671조원)에 달하는 국가 부채 해소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트럼프의 관세는 중국을 정면으로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기도 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궁극적인 목표가 중국과 독립된 생산 및 소비 체제를 글로벌 차원에서 재편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해 독립적인 글로벌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부활은 필수적이고,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는 달러 약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달러 약세를 추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트럼프는 관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국내 지지층의 요구와도 부합한다.
◆아시아 국가는 '직격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대미 수출에 크게 의존해온 국가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석기관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적자 중 4분의 3 이상이 15개국에서 발생하며, 이 중 9개국이 아시아 국가로 이들의 경제 규모는 총 41조달러에 이른다.
이번에 상호관세가 부과되면서 전후(戰後) 아시아 국가들이 채택해온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싱크탱크인 로위 인스티튜트의 롤랜드 라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관세 충격이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과거 위기가 경기 순환적이거나 금융 시스템 중심의 충격이었다면, 이번에는 구조적인 충격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발표된 관세 외에 상호관세까지 도입되면서 미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최대 1.3%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은 제한적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을 방문해 미국산 제품 구매를 약속하거나,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트럼프를 설득하려는 방식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정책이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감소는 불보듯 뻔하다. 결국 고용 축소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미국
그러나 트럼프 관세 정책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관세가 수입품 가격을 상승시켜 물가를 올리고, 이로 인해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져 경기가 침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관세 충격이 1930년대 악명높았던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법' 당시보다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 1929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자인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이 미국 경제를 보호하겠다며 발의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대공황을 악화시켜 이후 자유무역 질서에 균열이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반면교사로 언급되곤 하는 사례다.
미국 다트머스대의 경제사학자 더글러스 어윈은 "스무트-홀리법 때보다 훨씬 더 큰 일이 될 것"이라며 "현재 미국의 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30년대 초반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의 상품 및 서비스 수입은 GDP의 14%로, 1930년 당시의 약 3배에 달한다. 따라서 미국에 금융위기급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동맹 체제도 뿌리째 흔들려
트럼프의 관세 공세는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동맹 체제에 치명타라는 진단이 나온다. 대상국과 전방위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율 관세가 적대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에도 차별 없이 집행되는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때문에 거의 모든 동맹국의 상심이 커진 때에 이번 관세가 미국 동맹 체제의 마지막 지지대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관측이다.
유럽에서는 미국에 대한 안보, 경제 의존도를 낮춰야 할 것이라는 디커플링 논의가 한창이다. 트럼프가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며 나토의 집단방위 체제를 흔드는 데다 최대 안보위협인 러시아 편애를 노골화하기 때문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신임 총리는 "미국과의 오랜 관계는 끝났다"고 공언했다. 트럼프가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합병하겠다며 여의찮으면 캐나다 경제를 초토화하겠다고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동맹들에서도 심상치 않은 불안이 관측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관세 부과는 대서양, 태평양, 캐나다 동맹 등 3대 기둥을 없애는 최후의 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이들 지역에서 군사적 관계, 통상 의존도, 80년 넘게 키워온 연대는 모두 밀접하게 얽혀있다"며 적대적 관세의 파급력을 설명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동맹 경시가 결국 제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마디로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무역 정책이 아니라, 미국이 직접 설계해온 자유무역 질서와 동맹 체제를 스스로 허무는 '체제 붕괴 선언'에 가깝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는 일시적 지지를 얻을지 몰라도, 결국 자충수가 될 수 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분열, 미국의 전략적 고립, 동맹 이탈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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