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만년 전 충남 공주 석장리에 한 무리의 구석기인들이 자리 잡았다. 비단강(금강·錦江) 북쪽 강변에 구석기 시대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강은 물고기가 넘쳐나 먹을거리를 구하기 쉬웠고, 산과도 떨어져 있어 맹수로부터 안전했다. 1964년 첫 조사 이후 13차례에 걸쳐 발굴이 진행됐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구석기 유적이자 사적 제334호로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입증했다. 층위 별로 여러 문화층이 존재해 시기에 따른 구석기문화의 변화상을 밝혀줬다. 발굴 과정에서 다양한 자연과학 분석 방법을 도입해 한국 구석기시대 연구를 비롯 고고학의 기초 체계를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1987년 7월 22일 부여 지방에 517.6㎜의 폭우가 쏟아졌다.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 했다고 한다. 관측 이래 하루 강수량 역대급 기록이었다. 3일간 내린 비의 양은 673mm였다. 당시 폭우는 기상학자들이 800년 빈도의 집중호우라고 분석할 정도로 엄청났다. 부여와 공주, 서천을 포함한 금강 하류 일대가 휩쓸렸고 사망자는 129명, 재산피해액은 2900억원에 달했다. 자연재해였지만 치수(治水)와 방재에 실패한 대표적인 인재로 꼽혔다. 이전에도 금강 하류는 호우가 닥치면 상습적인 침수 피해를 입었는데 별 대책을 세워오지 않은 탓이었다. 이후 국가적 차원의 방재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반성이 확산됐다.
강은 문명 탄생과 번영의 터전이다. 인류 4대 문명이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나일, 인더스·갠지스, 황허(黃河)같은 강을 끼고 태어났다. 세계의 명품 수도가 미국 포토맥(미국 워싱턴D.C), 템스(영국 런던), 세느(프랑스 파리) 등 강 주변에 자리 잡은 게 우연이 아니다. 동북아 고대문화를 꽃피운 백제만 하더라도 왕성(王城·수도)이 금강변의 공주와 부여였다.
반면 산불과 마찬가지로 자연 재해로부터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에 치수천하(治水天下)라는 말이 생겼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의미다. 순(舜)임금 시절 우(禹)가 아버지의 실패를 딛고 치수에 성공해 중국 최초의 왕조로 일컬어지는 하(夏)나라를 세웠다는 고사를 전설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물난리를 자주 겪던 중국이 2025년까지 주요 하천과 홍수를 정비하겠다는 '물 안전 보장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수나 가뭄이나 모두 문제가 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충청 여론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건 역사와 경험에서 비롯됐다. 강을 다스리지 않고는 안전은 커녕 번영을 일구기 어려운 데 치수와 관련한 역대 정부의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약 7조원이 투입된 금강살리기 사업으로 치수를 했는데 최근 다시 금강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확히는 금강의 세종보 재가동을 놓고서다. 현재 세종시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금강의 수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과거 2m 이상을 유지하던 수위가 1m 아래로 내려갔고, 강 내부 곳곳에 모래톱이 쌓여 육역화(陸域化) 되는 건천화 단계다. 이에 세종시는 금강 물을 끌어들여 호수공원과 방축천 등 시내 주요 하천에 공급하는 중이다. 여기에 친수공간을 조성해 도시를 명품화하고, 용수가 필요한 기업 유치까지 겨냥하고 있다.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지난달 27일 환경부에 세종보의 조속한 재가동을 촉구했다. 최 시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을 만나 "기후 변화 대응과 안정적인 수량 확보를 위해서"라며 세종보 재가동을 요청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전달했다. 김 장관은 "원칙적으로 공감하며,세종보 재가동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학나래교(사진 왼쪽)와 한두리대교 중간에 위치한 세종보. 세종시청 제공
지역 환경단체는 반발하고 나섰다. 보 가동으로 인해 수질이 악화되고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논리다. 세종보 재가동 반대, 보 전면개방 관철을 위해 금강 변에 천막을 치고 320일 넘게 농성을 해 온 '보철거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지난 15년간의 모니터링 데이터를 담은 20페이지 분량의 세종보 보고서를 토대로 세종보의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세종보 재가동 이슈를 놓고 여론이 찬반으로 쫙 가라졌다.
갈등과 대립이 깊어지는 가운데 최근 홍승원 '세종보가동주민협의체' 대표가 "환경운동단체가 제안한 끝장토론에 적극적으로 응할 의사가 있다"고 했고, 이에 박창재 '세종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세종시의회가 주관해, 양측이 만나 토론을 하는 방향이라면 수용할 수 있다"고 받았다. 생산적인 만남으로 접점을 찾을지, 빈손으로 돌아설지 주목된다.
사실 세종보는 2006년 7월 노무현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개발계획'에 담겨 있었다. 금강의 물이 부족한 만큼 보를 설치, 충분한 수량을 확보해야 한다며 가동보와 고정보를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 추진 이전에 행복도시 입지결정 과정에서 계획된 것으로 '4대강 지우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무리라는 반증이다.
문재인 정부가 4대강 보에 물을 가두지 않고 상시방류 정책을 펴자 2022년 금강 유역 주민들이 심각한 가뭄 속에 용수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일도 있었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강한 반대로 담수를 유지해온 낙동강·한강 보 주변과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반면교사 또는 교훈으로 삼자면 세종보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활용하면 그만이다.
가뜩이나 이상 기후가 지구촌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역대 최대 피해를 낳은 경북 산불의 원인 중 하나가 '환경 양치기'들의 벌채에 대한 혐오다. 울창한 산림에 임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인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나무를 베어내더라도 숲의 훼손은 일시적이고, 더 다양한 생물이 채워져 복원되면서 살아난다고 한다. 산에 길이 있으면 산불 예방과 진화에도 효과적이다. 세종보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