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과거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가진 자, 못 가진 자, 그리고 요트 주인이 있다고 하죠."

영국 사회의 초양극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더니 한 분석가는 현대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때 요트 주인은 슈퍼리치, 즉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빈자와 부자가 있었다면, 요즘은 또 하나의 그룹인 슈퍼리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슈퍼리치가 승자독식으로 부를 독점하니 부의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 분석가는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진 점이 부의 초양극화다. 사회의 버팀목이었던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중간지대도 없어진다. 이를 '모래시계 현상'이라고 부른다. 마치 모래가 위에 있거나 아래로 다 내려가, 가운데는 뻥 뚫린 모양새다. 양극단 사회의 단면이다.

이런 부의 쏠림현상은 국가뿐만 아니라 산업과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시장도 '극과 극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동산은 어찌 보면 그 경제나 사회를 투영하는 또다른 거울이니까. 최근 서울 반포동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전용면적 84㎡)가 70억원에 거래된 것은 극단적인 차별화의 단면이다. 이 가격이라면 어지간한 빌딩을 살 수 있는 값이다. 요즘은 강남 아파트값이 고공비행한다는 점을 들어 양극화를 넘어 강남 일극화(一極化) 시대라는 말까지 회자된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탈동조화 현상'이다. 지역과 상품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 각개전투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한동안 주택시장은 저금리와 과잉유동성 영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강했지만 요즘 들어선 완전 딴판이다.

수요자들이 느끼는 온도 차는 더욱 심하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온기가 돌면서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비(非)수도권 아파트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분다.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등 비(非)아파트 시장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런 탈동조화 현상은 2023년 1월 이후 3년째 지속되고 있다. 수요자들의 부동산 특정 지역과 상품의 편식현상이 노골화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지방 부자들 사이에서 서울에 집 사놓기가 유행이다. "서울 집 한 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집을 사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매입하려는 상경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상경 투자가 두드러지게 늘어난 시점이 우리나라 내국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2020년 전후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아파트 매입은 미래 인구 충격에 대비한 지방 부자들의 선제적 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겠지만 서울 주택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집값 불안의 또다른 불씨로 이어질 수 있다. 강남과 같은 특정 지역 아파트값만 오르면 사회적 위화감과 갈등, 근로 의욕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이 뒤따른다.

지금처럼 저출생과 고령화가 지속한다면 30년 뒤 한국 부동산의 미래가 있을까. 일부 도심은 살아남겠지만 나머지는 거의 좌초자산이 될 것이다. 지역에 따라 극과 극으로 분화되는 '공간의 마태 효과'(matthew effect, 빈익빈 부익부 현상)가 극심해질 것이다. 공간적으로 특정 지역만 뾰족하게 치솟는 '슈퍼 슬림화' 모양새가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일자리, 교통, 병원, 대학 등 부동산 외적인 요인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방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서울로 향한다. 높은 심리적 인구밀도의 서울에선 비싼 집값에 내 몸 하나 가누기조차 어렵다. 결혼은 커녕 연애를 꿈꾸지도 못한다. 지방 거주 젊은이들은 서울보다 결혼과 출산을 더 많이 한다. 실제로 지난해 전남 합계출산율은 1.03명(전국 평균 0.75명)으로 전국 1위를 달성했다.

서울과 수도권 쏠림현상을 막고 지역 균형 발전을 해야 나라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지방을 살리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처방이 나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그래야 저출생이나 부동산 초양극화 문제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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