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로 이름 날린 왕희지와 함께 위진남북조 시대 예술계 '투톱'
'여사잠도'(女史箴圖), '낙신부도' (洛神賦圖), '열녀전도'(烈女傳圖) 남겨
中 인물화의 최고봉… 수묵 산수화의 시조로도 알려져
'논화'(論畵),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 등 회화 이론에도 공헌





[강현철의 중국萬窓] 중국 회화의 시조 고개지



서예로 이름 날린 왕희지와 함께 위진남북조 시대 예술계 '투톱'

'여사잠도'(女史箴圖), '낙신부도' (洛神賦圖), '열녀전도'(烈女傳圖) 남겨

中 인물화의 최고봉… 수묵 산수화의 시조로도 알려져

'논화'(論畵),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 등 회화 이론에도 공헌



중국 회화의 대표로는 '수묵 산수화'(水墨 山水畵)를 꼽을 수 있다. 채색을 가하지 않고 먹의 농담을 이용해 먹물로만 그린 그림이다. '수묵'이라는 용어는 당나라의 시인 유상(劉商)의 시 구절에 처음 나온다. 묵화(墨畵)는 기법상으로 나누면 크게 △먹선만을 사용해 그린 백화(白畵) 또는 백묘화(白描畵) △먹선에 수운(水暈), 즉 농담(濃淡) 효과를 내기 위해 물에 푼 먹물까지 사용한 정식의 수묵화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는 다시 먹의 농담을 이용한 파묵(破墨)과 먹물이 번져 퍼지게 하는 발묵(潑墨)의 두 가지 기법으로 나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주대(周代) 말기부터 시작된 수묵화 기법은 먹선만을 사용해 그린 백묘화에서 출발해 파묵, 발묵 기법 등으로 발전했다. 먹색만으로 모든 색채의 효과를 나타내는 수묵화의 주요 소재는 산수, 인물, 수석(樹石), 화조(花鳥), 영모(翎毛·새와 동물), 사군자(四君子) 등 다양하다. 문인화(文人畵)는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 사대부들이 여기로 그린 그림으로 북송(北宋)때 발달했다. 담백하고 고아(高雅)한 특성을 잘 드러낸다. 고개지(顧愷之, 344년 ~ 406년경)는 중국 미술의 기틀을 닦은 동진(東晋)의 화가다.



◇ 중국 최고(最古)의 화가

고개지의 자는 장강(長康) 호는 호두(虎頭)이다. 장쑤성(강소성) 우시에서 출생했다. 서예로 이름을 날리던 명필 왕희지와 함께 당대 예술계의 투톱이었다. 인물, 동물, 풍경화 등에 재주가 있었으며,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다. 송나라 육탐미(陸探微), 양나라 장승요(張僧繇)와 함께 육조(六朝)의 3대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당(唐)나라 장현원(張玄遠)이 지은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등에서도 세 사람이 함께 거론된다. 육조는 한 나라 이후 조조, 유비, 손권이 등장하는 위, 촉, 오의 삼국시대부터 사마 씨의 진(晉) 나라, 이후 남북으로 나뉜 분열된 시기다. 북쪽은 북방의 소수민족이 건립한 16개 국가 즉 오호십육국이, 남쪽은 한족이 세운 송, 제, 양, 진의 네 나라가 흥망을 거듭해 370여년간 이어진 혼란기다.

위진남북조 시대 중국 회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전까지 미술은 건축물을 장식하고 왕조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조각과 벽화가 주를 이뤘지만 위진남북조 시대에 들어서면서 회화가 순수 예술창작 분야로 독립했다. 주제와 소재가 다양해지고, 초상화와 생활상을 반영하는 그림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인물화를 중심으로 가로로 긴 두루마리 형식을 위주로 하는 회화 전통도 생겨났다.

고개지는 교묘한 필치와 예리한 관찰로 형체의 특징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묘사해 당대 사람들은 그를 재주가 많아 재절(才絶), 그림이 출중해 화절(畵絶), 재치가 뛰어나 치절(癡絶)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며 '삼절'(三絶)이라 불렀다.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여사잠도'(女史箴圖), '낙신부도' (洛神賦圖), '열녀전도'(烈女傳圖) 등 3점이 있다. 이가운데 '여사점도'는 당나라 때의 모사 작품이라는 유력하다. 회화 이론에도 공헌, 중국회화사에 이름을 남겼다. 회화이론 서적으로는 '위진승류화찬'(魏晉勝流畵贊), '논화'(論畵),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 등이 있다.

고개지 인물화의 화법은 가름한 얼굴에 수려한 모습의 '수골청상'(秀骨淸像)이 특징이다. 유연하면서도 탄력있는 필선으로 인물의 윤곽선이나 옷 주름선 등을 묘사했다. 그래서 봄날의 누에고치가 가늘고 길게 끊임없이 실을 토해낸다는 '춘잠토사'(春蠶吐絲), 물속에서 막 나온 듯 옷이 몸에 착 달라붙은 것처럼 보이는 '조의출수'(曹衣出水)라는 말이 생겼다.



◇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옮긴 고사화( 故事畵) '여사잠도'(女史箴圖)

'여사잠도'는 진나라 문학가 장화(張華)가 지은 '여사잠'(女史箴)'이란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중국 회화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여사잠'은 부녀들의 올바른 행실에 관한 글이다. 여사잠도는 원래는 12폭의 그림이었는데. 지금은 9폭만 전해진다. 먼저 글이 있고 그 장면에 해당하는 그림이 이어 등장하는, 글과 그림이 번갈아 반복되는 전형적인 고사화(故事畵)의 형식이다. 문학과 회화의 결합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사화 형식은 그후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누에의 가는 실 같은 잠사선(蠶絲線)을 사용해 치밀하게 그렸으며, 뛰어난 화면구성을 통해 훈계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어 네번째 폭은 거울을 들고 얼굴과 머리를 단장하는 여인과 하녀를 그렸다. "사람들이 얼굴은 다듬을 줄 알지만 심성을 닦을 줄은 모른다. (중략) 도끼로 고치고 끌로 다듬어 신성한 품성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글의 내용을 묘사했다. 다섯번째 장면은 휘장과 병풍으로 둘러진 침상에서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다. 그 옆에는 "하는 말이 선(善)하면 모두가 따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부 사이라도 의심하게 된다"는 글을 적어 놓았다. 외모를 가꾸는 데만 노력하지 말고 심성을 닦으라는 이야기, 또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현대에도 통용될 만한 교훈적인 내용이다.

그의 화법은 필선이 명주실처럼 가늘고 섬세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다고 해서 '춘잠토사식'(春蠶吐絲式) 또는 '유사묘법'(遊絲描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농담(濃淡)의 색채를 희미한 점철로 처리하는 등 특이한 도칠(塗漆) 방법도 구사하고 있다. 원래 청나라 궁중에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1900년 위화단 사건 당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 원명원을 불태울 때 3폭이 없어지고 9폭만 영국으로 흘러나가 현재는 런던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여사잠도'(女史箴圖), 동진 시대. 비단에 채색. 세로 24.8cm, 가로 348.2㎝,  당 모사본.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여사잠도'(女史箴圖), 동진 시대. 비단에 채색. 세로 24.8cm, 가로 348.2㎝, 당 모사본.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조식의 '낙신부'를 바탕으로 한 '낙신부도'(洛神賦圖)

'낙신부도'는 조조의 아들이자 문인인 조식(曹植)의 걸작 '낙신부'(洛神賦)를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조식은 위(魏)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10살 때 이미 11만자의 문장들을 외우고, 위(魏)가 천하를 사실상 통일한 후건안(建安)문학을 일으켰으며, 오언시(五言詩) 형식을 완성시켜 훗날 사령운(謝靈雲) 및 당 나라 이백(李白) 및 두보(杜甫)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낙신부는 222년 조식이 형인 조비(曹丕), 즉 위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들어갔다가다시 자신의 봉지로 돌아가는 도중 낙수(洛水)를 지나가면서 낙신(洛神)의 일을 생각하고 지었다. 작가와 낙수의 여신이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서로 맺어질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복비(宓妃)의 신화를 기초로 낙신(洛神)이라는 미녀를 창조했다. 전기적(傳奇的) 색채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낙신부도는 3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조식과 낙신(洛神)의 진실한 사랑이 기승전결 형식으로 묘사돼 있다. 인물들이 조밀하고 적절히 배치되고, 산과 물의 경치가 공간미를 채운다. 섬세하고 소박하게 묘사돼 초기 산수화의 특징을 잘 구현하고 있다. 원본은 소실됐지만 북송때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낙신부도가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에 있다.

들어갈수록 경치가 뛰어남을 뜻하는 '점입가경(漸入佳境) 은 고개지의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진서'(晉書) '고개지전'에 따르면 고개지는 사탕수수를 좋아했다. 항상 뿌리에서 먼 쪽의 얇은 가지부터 먼저 씹어 먹었는데, 사탕수수는 뿌리 쪽에 가까울수록 단맛이 강하다. 친구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점점 갈수록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이지(漸入佳境)"라고 대답했다. 이 때부터 점입가경은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논설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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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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