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거야(巨野)가 경제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 13일 기업을 고사(枯死)시킬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기어코 강행 처리했다.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진 상법 개정안은 재석 279명 중 찬성 184명, 반대 91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반대·기권 투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 발의해 통과시킨 상법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확대,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적용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전자주주총회 근거 규정 마련 등이 골자로, 공포 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이 가운데 이사의 충실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힌 것이 가장 큰 쟁점이다. 언뜻 주주를 대리해 회사 경영을 맡는 이사들이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장경제에서 기업경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독소 조항이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 논의는 국내 상장사 주가가 외국 기업에 비해 낮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 방안에서 출발했다. 현행 상법상 이사는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충실의무를 부담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의 경우 이사회가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 이사에게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시키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훨씬 큰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될 경우 이사회 기능과 회사 경영이 마비될 수 있다. 이사와 이사회는 회사의 장기적 이익뿐만 아니라 단기적 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해 경영 의사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게 된다. 더구나 소액주주나, 경영권을 노리고 소수 지분을 확보한 외국 투기자본들이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 특히 이사는 회사 아닌 주주에 대해서도 형법상 배임죄를 질 수 있다.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형사 고소를 남발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사가 형사소송을 당할지도 모를 M&A(인수합병)나 신사업 진출, 자산 매각 등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되면 기업은 일년 내내 소송에 휘말리며, 이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 이사회 자체를 꾸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사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도 논쟁거리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이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사내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이 소수 지분만 확보하고도 이사와 감사 선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 기업들은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등 글로벌 기업들에 보편적인 경영권 방어수단도 갖지 못한 실정이다. 늘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과 '먹튀' 위험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개정 상법은 기업인들의 기업하려는 의지를 꺾고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과 일자리 확충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게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내세우는 '잘사니즘'인가. "상법 개정은 우리 기업들을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몰아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함으로써 국가경제의 '밸류다운'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경제단체들의 우려는 괜한 엄살이 아니다. 이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는 반대한다면서도 직을 걸고서라도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시장경제와 기업경영의 원리에 무지한 발언으로, 국정을 책임지는 일원인지를 의심케 한다. 회사의 이익에는 본질적으로 이미 주주의 이익이 포함돼 있다. 회사가 이익을 내면 이는 곧 주주에게도 돌아가는 것이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은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 그리고 기업문화가 중요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국 경제의 미래와 청년세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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