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소송 남발·투기자본 공격에 경영권 위태 기술력 갖춘 중소·중견도 기업사냥꾼에 노출 자본시장법으로 대체 호소·재의요구권에 희망 거야(巨野) 주도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들은 말 그대로 '칼날 위에' 선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 미래 투자, 인수합병(M&A) 등의 과정에서 모든 주주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현실인 만큼 결국 '소송 남발'로 이어져 기업 경영이 사실상 '올스톱'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여기에 무리한 배당부터 경영권까지 노리는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하려다 기업 경영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계에서는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주주 보호 장치를 만들 수 있다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소송 남발에 경영권도 위태=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될 경우 투자 위축, 소송 남발, 투기자본 먹튀 등의 우려를 강하게 표하고 있다. 특히 단순 주주뿐 아니라 엘리엇(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등 행동주의 펀드들이 소액의 주식을 매입한 후 '충실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경영권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선 주주들의 소송남발 우려가 나온다. 기업들이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려다가도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주의 반대에 부딪힐 경우 '미래'와 '현재'를 주장하는 주주사이에서 기업들의 결정도 차일피일 미뤄질 수 있다. 특히 인수합병(M&A)의 경우 물밑 작업과 속도전이 생명인데, 이런 민감한 사항을 주주동의를 얻어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행동주의펀드 등 투기자본에 대한 공격은 기업들의 경영권마저 흔들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2003년 행동주의펀드 소버린은 SK㈜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를 통한 지분 쪼개기로 2.99%씩 매입했고, SK㈜는 소버린 측의 이사 선임을 막기 위해 위임장 확보에만 1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했다.
작년엔 싱가포르계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가 KT&G를 상대로 1조원대의 주주대표소송을 걸기도 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주대표소송이 아닌 각 주주별로 각각의 이사에 대한 개별 소송을 할 수 있게 된다. 판례나 학설 등에 따르면 현재 이사가 주주에게 미친 손해는 간접 손해로 해석되지만, 상법 개정안이 적용돼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 직접 책임 근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체력이 어느정도 뒷받침 돼 소송전이나 비용 부담에서 어느정도 버틸 여력이 있지만,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외부 기업사냥꾼의 공격 대상이 되고 경영권 방어에 치중해 기술개발, 시장개척 등 성장의지를 꺾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거부권에 마지막 기대= 이번 상법 개정안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의 안건은 여당과 재계의 반대에 이날 본회의에서는 제외했다. 하지만 재계가 상법 개정안 대신 요구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는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기업이 합병·분할 시 주주보호 의무를 신설하고,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을 규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등장이 일부 대기업들의 물적 분할 후 상장 사례가 꼽히는 만큼, 주주 보호 장치를 자본시장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게 재계 요구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은 이날 "상법 개정안은 지배구조 개선,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자본시장법을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재계는 최상목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여당은 최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해 장담은 어려운 상황이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전 한국경제연구원장)는 "현재는 재의요구권 행사 외에는 방법이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기업을 성장시켜 상장한 지배주주와 일반 소액주주를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은 사기업인데 이를 공공기업으로 간주하다보니 (상법 개정안을) 만드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발상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