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親)러시아 행보가 심화하면서 유럽이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방'(the West)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유럽도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 내부에서는 독자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보도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는 '디커플링(Decoupling, 분리) 현상'을 분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냉전 시기 소련의 전략적 목표 중 하나는 미국과 유럽을 갈라놓는 것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 목표를 트럼프 행정부가 불과 몇 주 만에 달성해버렸다는 것이다.

유럽 정치권에서는 이는 단순한 외교 정책 전환이 아니라, 국제 질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럽의회 내 중도 성향 정치그룹인 '리뉴 유럽'의 발레리 아이에르 대표는 "미국은 그동안 평화를 유지하는 핵심 기둥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유럽에 중대한 도전 과제가 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MS '빙 디자인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이미지.
MS '빙 디자인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이미지.


미국과 유럽은 과거에도 의견 차이를 보인 적이 있지만, 냉전 이후 자유민주주의라는 공통된 가치를 기반으로 협력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만약 '서방'이라는 개념이 사라진다면, 그 공백을 '폭력'이 채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세계 강대국 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내부에서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파리정치대학의 사회학자 니콜 바샤랑은 "트럼프가 어떤 결정을 하든,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했다는 것"이라며 "유럽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긴급히 통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럽 주요국들은 독자적인 방위력 강화에 나설 채비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핵우산을 유럽 동맹국들에게 확대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한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도 자체적인 방위력 강화를 위한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별도로 유럽 자체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나토와 EU의 약화를 목표로 삼아왔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틀어지는 현 상황은 그가 원하는 결과에 가깝다. 러시아는 중국, 이란,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서방의 영향력을 줄여나갈 것이다.

결국, 트럼프의 친러 행보는 단순한 외교적 변화가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유럽은 이제 '서방 동맹'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자립적인 안보와 정치적 결속을 강화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유럽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떤 외교적 입장을 취할지, 그리고 독자적인 안보 체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지가 향후 국제 질서에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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