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기술은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왔다. 1980년대 PC 보급의 본격화로 개인이 컴퓨터를 보유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어서 등장한 인터넷으로 전 세계 정보를 방안에서 즉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007년 등장한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와 경제 전반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2025년을 살고 있는 지금, 스마트폰의 뒤를 이어 혁신적으로 삶을 바꿀 기술은 무엇일까? 그 대안으로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급부상한 메타버스와 차세대 변혁 기술로 주목받는 공간컴퓨팅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가상과 현실을 실시간 연결해 공간을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사용자는 별도의 기기 조작 없이 공간 자체에서 정보를 보고, 듣고, 상호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Gartner)는 공간컴퓨팅을 2025년 10대 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했고, 인공지능(AI)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스탠포드대학 페이페이 리(Fei-Fei Li) 교수는 AI와의 결합을 통한 공간 지능(Spatial Intelligence)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도 다양한 기업들이 AI 기반 스마트 글래스를 선보이는 등 공간결합기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을 미래 핵심 기술로 인식하고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메타와 애플은 머리에 착용하는 디바이스(HMD; Head Mounted Display)를 출시한 이후 스마트 글라스 개발을 적극 추진 중이고, 삼성과 구글은 후발주자로서 퀄컴 등 관련 기업과 협력하여 새로운 XR 기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애플(Vision OS), 메타(Horizon OS), 구글(Android XR)은 각각 운영체제를 공개하고, 플랫폼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생태계를 장악하기 위해 진영간 주도권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필자의 연구원 ETRI는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의 중요성과 유망성에 주목하여 R&D 투자타당성을 검토하고, 다봄(DAVOM; Dimension Aggregation, Vision Obtaining Mechanism) 프로젝트를 제안하였다.
ETRI 검토 결과, 2032년 초실감 공간결합 시장규모는 88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해당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수용도(경험의향 65.1%, 구매의도 50.0%, 추가지불의사 +36.2%)가 높게 나타났다. 또한, 이 기술의 활용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생활 및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이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비자 기대 수준과 기술 수준 간의 간극 때문이다. 공간결합을 구현하는 요소기술이 시청각적 몰입감, 자연스러운 상호작용, 사용 편의성, 경험의 다양성 측면에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이 산업에 안착하고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 컴퓨팅, 콘텐츠 분야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R&D 성과가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산·학·연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함께 성장할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 선도를 위해 국제 표준을 선점하고, 이를 뒷받침할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PC, 인터넷, 스마트폰이 사회적·경제적 변혁을 이끌어내었듯이 초실감 공간결합기술은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 생활 양상과 산업 판도를 새롭게 정의할 디지털 혁신의 요체이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우리나라가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전환기의 요구와 기회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과감한 투자로 기술적 한계와 과제를 전략적으로 해결하여 기업과 함께 미래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