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80여 개국 30명의 정상이 참여한 세계정부정상회의(WGS)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미국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이자 혁신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였으며, 가장 큰 관심을 끈 세션 주제는 '관료주의 제로(Zero Government Bureaucracy)'였다.
지난해 WGS에서는 젠슨 황과 샘 올트먼이 AI가 가져올 글로벌 변화를 조명했다면, 올해는 미 DOGE의 영향으로 인해 정부 개혁과 규제 혁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머스크는 과잉 규제와 법률 축적으로 인해 관료주의(bureaucracy)가 민주주의(democracy)를 압도하는 현상을 강하게 비판하며, 현재 미국 정부에 450여 개 연방기관이 난립해 서로 업무를 침해하고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미국 정부의 마지막 IT 혁신은 2011년에 멈춰 있다"면서, 낡은 소프트웨어를 모두 정비·자동화·삭제하고 종이 기반 행정을 철폐하는 한편, AI와 혁신 기술을 활용해 정부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Tech Support'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그는 불필요한 규제와 절차를 제거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머스크뿐만 아니라 다수의 세션에서도 관료주의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관료주의 제로' 세션에서는 유럽, 중동, 동남아 국가들이 행정 절차 및 규제 혁파 사례를 공유했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국민 서비스 접근성을 높였으며, UAE는 2024년부터 '관료주의 제로 이니셔티브'를 추진해 2000여 개의 규제를 철폐하고 모든 행정 처리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했다. 또한, 공무원들에게 'Zero Bureaucracy Award'를 수여해 절차 축소, 삶의 질 제고, 경제적 효과, 공동체 신뢰, 공공-민간 협력, 혁신적 관료제 제거 등 7개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기관을 시상했다.
에스토니아는 '뷰로크라트'(Burokratt) 프로젝트를 추진해 국민이 단일 AI 챗봇을 통해 모든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영국은 1억4300만건의 반복적이고 복잡한 행정 거래를 AI로 자동화해 연간 1200명의 업무량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한국 정부는 이미 2022년 챗GPT 등장 이전부터 '디지털플랫폼정부(DPG)'를 기치로 내걸고 선제적 혁신을 추진해왔다. 범정부 초거대 AI, DPG 허브, 클라우드 네이티브, 공공-민간 데이터 융합 등을 통해 공공 서비스 혁신을 꾀했으며, 국민과 기업 및 청년을 위한 '혜택 알리미' 서비스는 AI 에이전트 시대를 앞서갔다.
또한, 모든 공공 서비스를 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범정부 통합 서비스', 불필요한 서류 제출을 없애는 '구비서류 제로화', 법과 제도 설계 시 디지털을 우선 고려하는 'Digital by Design' 등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특히,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해 공공 부문에서 200건 이상의 AI 활용 성공 사례를 창출한 디지털플랫폼정부의 혁신은 UAE, 싱가포르, 벨기에, 일본, 이스라엘 등 여러 국가로부터 사례 공유와 협력 요청을 받을 만큼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공급자 중심의 디지털 정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과 기업이 수요자이자 공급자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공의 역할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AI, 클라우드 등 민간 혁신 기술이 결합할 수 있도록 공공데이터를 원천 데이터로 적극 개방하고, 공공 인프라를 민간의 혁신 속도에 맞춰 확충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제 디지털플랫폼정부위 3년차에 접어들면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는 만큼, 정치적 환경과 무관하게 과거 공급자 중심의 디지털정부를 지양하고, 민간-공공이 함께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를 멈추지 않고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정부혁신을 넘어서, AI전쟁 시대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편익을 극대화하는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