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 전환 가속… 주화 발행량 10년 새 98% 감소
유물·미술품 주제로 요판화 제작… 온누리상품권 통합 관리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한국조폐공사]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한국조폐공사]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최근 박물관 수장고가 포화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방치돼 있던 조폐공사의 지하 벙커를 예술 작품 보관용 수장고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성창훈(사진)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최근 디지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조폐공사 지하 벙커를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품 수장고로 쓰기 위해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조폐공사는 화폐 생산과 보관을 위한 특수시설로 사용됐던 경북 경산시의 지하 벙커를 2029년 준공을 목표로 정밀안전진단·내진성능평가 등 연구용역을 지원할 방침이다.

5일 조폐공사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증가와 정부 미술은행의 작품 수집 등으로 서울·과천·청주관의 수장률이 모두 90%를 넘어 수장 공간이 한계에 이르렀다. 조폐공사의 지하 벙커는 보완시스템과 철근콘크리트로 견고한 구조로 돼 있어, 미술품 보관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면적 6292㎡ 규모의 지하 벙커를 수장고로 활용하면 뛰어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부지매입과 건축비 등 국가 예산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성 사장은 "회사에 처음 왔을 때는 화폐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며 취임 후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이 가속화 되면서 조폐공사의 화폐 매출은 급감했다. 조폐공사의 올해 은행권 발행량은 5억4000만장으로 2015년(7억4000만장)보다 27% 떨어졌다. 주화 발행량은 올해 1000만장으로 2015년(6억2000만장)과 비교하면 98% 감소했다. 화폐 사업량이 줄어들면서 화폐 매출 비중은 1951년(100%)보다 지난해 6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에 공사는 현금 사용 감소로 인한 위기를 신사업 발굴로 돌파했다. 화폐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ICT·문화 수출 기업으로 사업 전환을 추진하고, 비유통 화폐 사업을 본격화했다.

성 사장이 주목한 것은 화폐제조 기술을 활용한 요판화 사업이었다. 은행권을 찍어낼 때 쓰는 고도의 기술인 '요판인쇄'를 활용해 우리나라 대표 유물과 미술품을 주제로 요판화를 제작했다. 선과 점만으로 작품을 구현하고, 위조 방지 기술을 활용해 작품의 희소성과 가치를 더해줬다.

성 사장은 "지난해 인왕제색도 요판화를 대형, 중형, 소형으로 3개 크기로 팔았는데 대부분 완판돼서 나갔고, 사람들이 문화적인 가치를 느낀 것 같다"며 "올해는 이중섭 작가의 황소, 맹호도, 광복80년 기념 요판화도 출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핵심 사업으로 예술형 주화를 꼽았다. 단순 일회성 행사를 기념하는 기념주화와 달리 예술형 주화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매년 동일한 주제로 발행된다. 미국은 독수리, 중국은 판다, 캐나다는 단풍잎(메이플) 등을 새겨 예술형 주화를 판매하고 있다. 예술형 주화는 기념주화와 다르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판매가격이 귀금속 시세에 따라 변동되므로 투자와 수집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2022년 기준 해외 주요국의 예술형 주화 매출 규모는 미국은 4조8510억원, 중국은 4조2650억원 등 20조원 규모로 예술형 주화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념주화만 발행하고 있어, 예술형 주화의 시장 진출 기회조차 없는 실정이다.

성 사장은 그동안 관계 기관과 협의 하며 올해 하반기 결실을 맺기 위한 준비에 집중했다. 그는 "1년 동안 한국은행, 기획재정부와 같이 연구 용역도 하고, 해외에 가서 실제로 보고, 세미나도 여러 차례 하면서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미나를 통해 연령대별로 수요를 분석한 결과, 예술형 주화의 한쪽 면에는 한글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일치했으며, 반대쪽 면은 88올림픽과 평창올림픽에서도 상징적으로 사용된 호랑이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아 후보 중 하나가 될 것 같다"고 부연했다.

공사는 올해 제조업에서 ICT 기업으로 전환을 맞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중 하나가 온누리상품권 통합운영 사업이다. 그동안 지류, 카드형, 모바일로 나뉘어 있던 온누리상품권을 조폐공사가 통합 플랫폼으로 관리하게 됐다.

성 사장은 "옛날에는 카드앱 따로, QR 따로 앱이 2개가 있어서 관리가 잘 안되고, 부정 사용 등 문제가 많았는데, 통합관리를 하면서 홍보도 함께 한다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보인다"며 "그전부터 해오던 지역화폐의 직접결제 사업은 전국망이 없었는데, 이제 전국을 커버하면서 좀 더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사는 현재 운영하는 모바일신분증 서비스와 연계할 경우 복지수혜자 대상을 정확하게 인증하고, 한 번에 정책수당을 지급·조회·결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3년 임기 중 1년을 지나온 성 사장은 남은 2년은 완숙기에 들어서며 그동안 추진해온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계획이다.

성 사장은 "처음 왔을 때는 가장 빨리 없어질 공기업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위기라는 말도 있었고, 당시 문제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다양한 사업을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20년 차 부장들과 이야기 해보면 들어올 때부터 위기였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사업구조가 다양해지면서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조폐공사는 '혁신 공기업 1호'라고 말하고 싶다. 신분증 등을 만드는 ICT 회사, 화폐 굿즈·예술형 주화를 만드는 문화 기업 등 사업영역을 넓히고, 화폐 제조 기술을 활용해 국민 경제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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