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용 세종본부장
트럼프 2기 '관세폭탄' 韓경제 치명타

대미 협상 진두지휘할 핵심수장 부재

안 장관의 방미 '통상외교' 결실 중요

상호관세 부과 한달 앞 대응카드 절실


#'쩍벌남'으로 불리던 윤석열 대통령이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22년 5월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개최된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다. 이를 두고 "국민 앞에 당당함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외교적 상호주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가 미국을 방문해 레이건 대통령과 나란히 다리를 꼬고 앉았다. 사진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입길에 올랐는데 노 후보는 "레이건이 다리를 꼬기에 나도 그랬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측근의 연출에 따른 이미지 조작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사진 한 컷은 힘이 세고 여러 메시지를 남긴다. 어느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문회장에 들어가기 전 물을 잔뜩 마시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야권 의원들의 질의 폭탄을 받아내며 소변을 참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물 컵을 들고 마시는 순간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장면만큼은 보여주지 않아 남는 장사였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 산업부 제공
안덕근 산업부 장관. 산업부 제공


트럼프 2기 통상전쟁에 불이 붙은 가운데 미국을 방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우리로서는 저승사자와 같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면담 자리다. 한 컷으로 당시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젠틀맨 안 장관답지 않은 전투력으로도 읽힌다.

구체적 성과를 얻었을까. 그는 지난달 26~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등과의 면담을 계기로 미 측 관세 조치 계획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양국 간 협력 강화방안을 협의했다. 또 마크 켈리 상원의원과는 한미 간 조선협력 강화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케빈 로버츠 헤리티지 재단 회장, 존 햄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회장, 아담 포젠 PIIE(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소장과는 한국의 효과적인 미국 통상현안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 한미 정부 간 협력의 가교역을 해줄 것을 당부한 강행군이었다. 트럼프 2기 관세 강화 조치로 전방위적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그 대응을 위한 광폭 행보로 풀이된다.

안 장관은 러트닉 상무장관과는 조선, 첨단산업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파트너십 강화를 협의했다. 미 정부의 관세 조치 계획에 대한 우리 기업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양측 간 관세 조치 관련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체와 한미 조선 협력 강화를 위한 실무협의체를 개설키로 합의했다.

정부는 실무협의체에서 우리 기업들의 이해가 최대한 반영되는 방향으로 미측과 관련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버검 위원장, 그리어 대표와는 각각 한미 간 상호호혜적인 에너지 및 통상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했다.

안 장관은 카운터파트너인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면담에서 "조선·첨단산업 분야 협력을 강화하자. 미국산 가스·원유 등 에너지 수입을 확대해 한미 무역수지 균형을 맞추겠다"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관세를 부과한다면 최소한 다른 국가보다 불리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러트닉 장관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해야 한다. 한국의 협력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무역적자 해소에 방점을 둔 답변인 듯해 아쉽다.

이즈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과 처음으로 화상 회담을 했다. 최 대행은 "상호관세 등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국의 미국 경제 기여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의 경제·통상 사령탑이 트럼프 2기 실세 장관과 잇따라 만나거나 통화를 하며 '관세 면제'를 호소했지만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건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부터 주요 무역국에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 요소까지 고려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만큼 고도의 협상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1개월도 남지 않은 골든타임 내 미국의 속내를 잠재울 카드를 내놓지 못하면 관세 폭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우리의 희망과 현실의 간극을 채울 해법은 없을까. 대통령실이 비어 있는 가운데 그나마 미 정부의 핵심 장관들에게 한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건 성과로 볼 수 있겠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상황이다. 한국이 미국의 관세 정책에 맞설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줄 수 있는 카드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달 중 미국으로 건너가 실무급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라니 지켜볼 일이다.

다만, 관세 부과가 본격화되기 전에 미국과 정상급 회담, 아니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구사한다. 실무급 만남으로는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안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통상 관련 부처의 존재감이 약하다", "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라는 산업계의 볼멘소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검투사'처럼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그립다는 말도 들렸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안 산업장관은 방미 기간 중 때로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때로는 단호하게 가스·원유 등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통해 한국이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추구한다는 뜻을 전달하는 한편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관심사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군분투했다지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거친 '카우보이'들을 상대해야 할 '선비' 안덕근 장관의 어깨가 더 없이 무겁다. 밥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백악관에서 쫓겨나오다시피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례를 위안으로 삼기엔 우리 경제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송신용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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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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