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이, 흰 백, 눈 안, 대할 대, 어조사 지. '백안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남을 업신 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본다는 '백안시'(白眼視)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중국 삼국시대 이후 위(魏)나라 말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일원이던 완적(阮籍)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에 "완적은 청백안에 능해서, 속된 선비를 만나면 백안으로 그를 대했다"(籍能爲靑白眼 見禮俗之士 以白眼對之·적능위청백안 견예속지사 이백안대지)는 구절이 있다. '청안'(靑眼)은 보통의 눈매, '백안'(白眼)은 흰자위를 드러낸 눈매를 뜻한다. 완적은 청안과 백안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속물을 만나면 백안으로 대응했다는 뜻이다.

완적은 눈동자를 굴려 자유자재로 흰자위를 드러나게 하거나 푸른빛을 나타내게 할 수 있었다. 같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의 형 혜희가 찾아왔는데 완적은 흰자위를 드러냈다. 그러자 혜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 소식을 듣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찾아왔을 때는 반색을 하며 푸른 눈자위를 보였다고 한다. 죽림칠현은 난세를 만나 세상을 피해 숨은 일곱명의 현자다. 완적, 혜강, 산도, 상수, 유령, 완함, 왕융을 가리킨다. 이들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고, 청담(淸談)을 주고받으며 세월을 보냈다. 노장(老莊)이 그들의 근본 사상이었다. 완적도 처음에는 관료로 진출했는데 정변으로 잦는데 환멸을 느껴 산야에 묻혀 살았다. 죽림칠현은 모친상에 거문고를 연주하고 상중에 고기와 술을 먹었으며, 옷을 벗어던지고 다니거나 불효의 죄로 고소당한 친구를 변호하는 등 당시 전통적인 가치관에 반기를 드는 행위를 일삼았다. 하지만 이런 광인(狂人)의 행태는 실상 난세에 뜻을 펼치지 못한 울분을 소극적으로 저항한 것이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 했다. 마음이 온화한 사람은 온화함이 눈빛으로 나타나 절로 호감이 가고, 반대로 늘 찌푸린 눈에겐 나도 모르게 반감이 커지기 마련이다. 명모(明眸)는 맑은 눈동자, 반(盼)은 예쁜 눈을 뜻한다.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백안시하면 나도 상대방에 호감을 가질 리 없다. 나와 생각이나 신념, 행동이 다르더라도 관용과 이해를 갖는 '톨레랑스'(tolerance)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갈수록 흰자위를 드러내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누굴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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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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