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 과천 청사. [연합뉴스]
중앙선관위 과천 청사.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채용 비리를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면접점수를 조작하는 등 온갖 편법과 위법을 동원, 간부 자녀에게 채용 특혜를 부여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불공정한 행태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안된다"고 판결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감사원은 27일 7개 시도선관위의가족·친척 채용 청탁, 면접 점수 조작, 인사 관련 증거 서류 조작·은폐 등의 비위를 골자로 한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원이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경쟁채용(경채) 291회를 전수 조사한 결과 모든 회차에 걸쳐 총 878건의 규정 위반이 있었다. 선관위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가족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인사·채용 담당자들은 면접 점수를 조작하는 등 온갖 위법·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혜 채용은 주로 국가공무원을 지방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경채 과정에서 발생했다. 채용 공고 없이 선관위 자녀를 내정했으며, 친분이 있는 내부 직원으로 시험위원을 구성하거나 면접 점수 조작·변조를 하는 등 온갖 꼼수를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합격하지 못한 일반 응시자 등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됐다. 채용 비리 관련자들이 감사 과정에서 자료를 파기하거나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등 증거 인멸과 사실 은폐를 시도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감사원은 비리 연루 전·현직 직원 32명에 대해 선관위에 징계를 요구하거나 비위 내용을 통보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선관위 측의 해명이다. 감사 과정에서특혜채용 관련자는 "과거 선관위가 경력직 채용을 할 때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2021∼2022년 경채 당시 선관위 인사 담당자 등도 선관위를 '가족회사'라고 지칭하며 "선거만 잘 치르면 된다", "절차만 지키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부의 조직적인 묵인과 방조가 '아빠 찬스'라는 채용비리를 낳은 셈이다.

하지만 이날 헌재는 선관위가 감사원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중앙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앞서 감사원이 선관위를 상대로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을 벌인 것은 위헌·위법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현행 헌법 체계하에서 대통령 소속하에 편제된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을 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선관위의 공정성,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며 "이는 대통령 등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선관위를 독립적 헌법기관으로 규정한 헌법 개정권자의 의사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의 직무감찰 제외 대상을 '국회, 법원 및 헌재에 소속한 공무원'이라고 규정한 감사원법 24조 제3항과 관련해선 "해당 조항은 예시적·확인적 규정에 불과하다"며 "해당 조항이 선관위 소속 공무원을 직무 감찰 제외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선관위가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결론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감사원은 선관위는 선거관련 행정사무를 하는 행정기관이므로 감사대상이 맞다는 입장이다. 감사원법에는 감사 제외 대상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만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헌재의 판결은 선관위의 비리에 대해선 그럼 누가 감시 감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선관위는 모든 시·군·구에 조직을 갖고 있고, 전체 직원이 3000명이나 되는 조직이다. 이렇게 거대하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에 대해 감사원 감사 없이, 자체 감사만으로 끝내게 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중앙선관위 위원장은 대법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각 시도선관위원장도 법원의 판사들이 맡고 있다. 선관위를 정상화하려면 법관이 비상근으로 위원장을 맡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런 점에서 헌재의 판결은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소쿠리 투표함' 논란 등 허술하고 불투명한 선거 관리로 선관위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때보다 커진 상태다. 수사당국은 선관위 비리를 철저하게 조사, 일벌백계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선관위 인사를 사법부와 분리, 명실상부하게 독립시키는 방안도 강구해볼 필요가 있다. 무더기 채용 비리와 엉터리 선거 관리로 선관위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린 건 감사원이 아니라 선관위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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