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주거 공간에 대한 욕망은 세월을 함께 보낸 세대의 특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편의를 추구하는 시대,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 쏠림현상은 쉽게 사라지 않을 것 같다. 요즘 2030세대인 MZ 세대, 이보다 더 어린 1020세대인 '잘파' 세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거 트렌드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포착된다. 아래 세가지 에피소드를 읽어보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파트 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대기업에서 30년동안 근무하다 퇴직한 60대 A 씨는 경기도 양평에서 살기 위해 전원주택 전셋집을 구하러 다녔다. 전원주택에 살고 싶었지만, 나중에 팔기 어렵다고 하니 굳이 구매하고 싶지는 않고 대신 전세살이를 선택한 것이다. 며칠간 물색 끝에 마음에 드는 전세 매물이 나왔다. 그런데 계약을 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타난 집주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이른 나이에 전원주택을 짓느라 고생했다고 덕담을 했더니 답은 의외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힘들여 지으신 집이에요. 팔고 싶지 않아서 전세를 놓는 겁니다." 젊은 집주인은 양평 읍내 아파트 전세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가 살기 편하죠. 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가 더 친숙하기도 하고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해도 아파트 살이가 훨씬 나아요." A 씨는 이야기를 듣고 30대 집주인이 왜 자신의 집은 임대로 주고 남의 집에서 전세살이하는지 알았다.
#2. 충남 당진에 농사를 짓고 사는 40대 초반 B 씨는 집이 두 채다. 하나는 시내 아파트, 또 하나는 농가주택이다. 아파트는 그가 사들인 것이고, 농가주택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주신 것이다. 그는 아파트에 살고 농가주택에는 주로 트랙터 등 각종 농기계를 놔둔다. 말하자면 농가주택은 농기계 보관소인 셈이다.
요즘 젊은이는 한적한 시골에 살아도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 살이를 꿈꾼다. 단독주택에는 주로 베이비붐 세대, 아파트에는 MZ세대가 산다. 이처럼 시골에서도 세대별로 주거방식이 극명하게 분화되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아파트 선호 현상이 강한 것은 풍요롭게 자라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대의 단면이 아닐까.
확실히 요즘 세대는 삶과 거주의 기대치가 높다 보니 불편함을 잘 못견디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신혼부부의 70%는 아파트에서 산다(국토교통부 2022년도 주거실태조사).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는 것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3. 서울에 사는 50대 회사원 C 씨는 요즘 명절 때 시골집을 찾을 때마다 어머니께 민망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년 전부터 중고등학생 아들딸이 시골집에서 하룻밤도 자려고 하지 않아서다. 아무래도 오래된 한옥이라 요즘 세대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할 것이다. 자식들도 아파트에만 살아왔으니 그 공간이 낯설 것이다. 어릴 때 이곳에서 자란 C 씨에게는 정겨운 곳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이불에서 냄새가 나고 먼지도 많다면서 시골집에 하루 이상 머물기를 꺼린다. 아이들에게 할머니께 도리가 아니라면서 나무라고 설득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 설 명절 때는 할머니집 방문을 동행하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다. 고민 끝에 타협 방안을 찾았다. 바로 인근의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동생은 읍내 아파트에서 산다.
아이들은 낮에서 할머니 집에 머물다가 저녁에 동생 아파트로 이동해 그곳에서 잔다. 아이들도 만족하는 눈치다. C 씨는 "아파트 키즈인 요즘 세대에게 무조건 기성세대처럼 불편을 견디면서 자라고 강요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를 고려할 때 아파트를 편식하는 젊은 세대가 주택시장에 주력으로 남아있는 한 아파트 문화는 더 지속될 것이다.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 결집체인 아파트는 어찌 보면 폭력적 건축물이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높게 지어 도시 경관을 해친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이런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파트를 미학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택 시장의 트렌드가 보인다. 어찌보면 트렌드는 핵심세대의 공간 욕망을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