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운용 이어 4곳 양자컴 출시 금현물 한투운용 독점체제 깨져 거래소, 신상품보호제 내놨으나 제도작동 미비에 "손놨나" 비판
여의도 증권가.[연합뉴스]
키움투자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각각 단독으로 운영해오던 상장지수펀드(ETF)에 타 운용사들이 유사 상품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에선 자산운용사간의 고질적인 'ETF 베끼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양자컴퓨팅 ETF를,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금현물 ETF를 단독으로 운영해왔으나, 경쟁사들이 잇따라 유사 상품을 출시하면서 중복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키움운용은 지난해 12월 아이온큐, IBM, 엔비디아 등 미국 양자컴퓨팅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 약 20개에 투자하는 'KIWOOM 양자컴퓨팅' ETF를 출시했다. 상장 당시 초기 설정액은 75억원이었으나,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이날 기준 순자산규모 1404억원대를 기록했다.
양자컴퓨팅 테마는 다른 테마에 비해 변동성이 크고 최근 관련 종목들이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를 단독 ETF 상품으로 출시한 키움운용의 성과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KIWOOM 양자컴퓨팅'은 키움운용이 출시한 주식 기초자산 ETF 중 6년 만의 최대 규모다.
KB·신한·한화·삼성액티브 등 4곳의 자산운용사는 미국 양자컴퓨터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ETF를 다음 달 출시할 예정이다. KB자산운용의 'KB RISE 미국양자컴퓨팅',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의 'KoAct 글로벌양자컴퓨팅액티브', 한화자산운용의 'PLUS 미국양자컴퓨팅TOP10' ETF가 한국거래소의 최종 상장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 곳의 자산운용사 모두 키움운용의 양자컴퓨팅 ETF와는 조금씩 다르게 차별화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액티브운용은 유일하게 액티브ETF를 선보이며 한화운용과 신한운용은 대표 기업 10곳을 꼽아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ETF 총보수도 키움보다 4bp(1bp=0.01%) 낮게 45bp로 책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안전자산인 금의 투자 수요가 높아지자 한투운용의 'KRX 금현물ETF'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액은 6228억원이었으나 지난 13일 1조42억원을 넘어섰다. 최근 순자산액이 소폭 줄어 9709억원에 그쳤으나, 이 역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55.89% 늘었다.
치솟은 금 가격이 향후 더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신한운용도 금 관련 ETF를 출시할 방침이다. 금현물을 추종하는 ETF는 한투운용이 유일했으나, 경쟁사의 출범으로 독점 체제가 깨지는 것이다. 다만 신한자산운용은 국제 금 시세를 90% 수준으로 따르면서 금 콜옵션을 매도해 연 4%의 옵션 프리미엄을 월 분배금으로 지급하는 커버드콜 ETF형식으로 출시한다.
양자컴퓨팅 ETF와 금현물 ETF 출시를 두고 자산운용사들의 'ETF 베끼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과거에도 중소형 운용사가 단독으로 판매하던 상품이 흥행하면 대형 운용사들이 유사한 상품을 변형해 출시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이는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사가 독창적인 상품을 출시하면 시장의 반응을 보고 대형사에서 비슷한 상품을 내놓는 건 오래된 일"이라며 "대형사에 비해 인지도가 낮고 운용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의 경우 대형사가 진입하면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상품의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상품을 잘 판매·운용하고 있던 중소형 운용사 입장에선 반가운 일은 아니"라고 전했다.
다만 금현물 ETF의 경우 유사 상품 출시로 금 프리미엄이 더 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100만원어치의 금현물ETF를 매수하면, 상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는 투자자 매수분 만큼의 금 현물을 예탁결제원에 보관한다. 한투운용과 비슷한 방식의 ETF가 출시되면, 금 재고가 부족해져 프리미엄이 더 붙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 같은 'ETF 베끼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독창적 ETF를 개발하면 6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주는 '상장지수상품(ETP) 신상품 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ETP 신상품 보호제도는 신상품을 출시하려는 증권·자산운용사가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면서 보호 요청을 하면 거래소는 심의회를 개최한다. 회의체는 독창성·창의성·기여도 항목마다 5점 만점으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전체 평균 점수가 4점 이상인 경우 신상품으로 지정한다. 이후 거래소는 전체 발행사에 공지해 상장일로부터 6개월간 유사 상품의 상장이 금지된다.
그러나 지수를 추종하는 ETF 특성상 독창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구성 종목을 조금만 변경해도 결국 다른 상품으로 판단돼 심사의 기준이 애매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방지책은 있지만, 적용이 애매해서 사실상 규정이 유명무실해졌다"며 "거래소가 손 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귀띔했다.
결국 키움운용은 경쟁사의 유사 상품 출시 움직임에 맞서 '양자컴퓨팅 ETF'의 리밸런싱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리밸런싱 주기를 반기(연 2회)에서 분기(연 4회)로 변경했다. 첫 리밸런싱 결과는 오는 3월 6일자로 반영되며 리게티컴퓨팅, 디웨이브퀀텀, 퀀텀컴퓨팅 등 양자기술 특화 스타트업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밸런싱 이후 'KIWOOM 양자컴퓨팅' ETF의 주요 투자종목으로는 아이온큐, 알파벳, 리게티컴퓨팅, 디웨이브퀀텀, 퀀텀컴퓨팅, 러니웰, 마이크로소프트, 팔로알토네트웍스, 아마존, IBM 등이다. 키움운용 관계자는 "양자컴퓨팅 산업의 역동적인 변화를 보다 적시에 반영하기 위해 리밸런싱 주기 변경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