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속도 빠른 신기술 분야, 규제가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
도태되지 않으려면 강한 국가 연구·산업 생태계 구축해야"

손병호 기술경영경제학회장
손병호 기술경영경제학회장


손병호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

"지금은 글로벌 빅테크로 자리잡은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기업도 불과 몇십년 전에는 창업기업이었습니다. 이들의 시대가 영원할 것 같지만, 챗GPT를 내놓은 오픈AI나 얼마전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 등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창업기업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손병호(사진)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 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은 "우리도 경쟁력 있는 딥테크 창업기업이 계속 등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R&D 성과의 기술사업화와 딥테크 생태계 확충에 힘써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19일 기술경영경제학회 3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기술경영경제학회는 경영, 경제, 정책을 기반으로 과학기술 혁신을 연구하는 융합학회로, 1992년 창립돼 2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국내 대표적인 과학기술 혁신정책 전문가인 손 회장은 KAIST에서 산업경영 박사를 받은 후 KISTEP에서 몸담으면서 미래전략본부장, 정책기획본부장, 혁신전략연구소장, 부원장 등 중요 보직을 맡았다. 과학기술 혁신정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수상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기술경영정책분과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인공지능(AI) 혁명, 에너지 대전환, 저출생·고령화 등 급변하는 환경은 국내외 과학기술 혁신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 기술사업화, AI와 과학기술·산업혁신, 핵심 인재확보 등 과학기술혁신 현안 관련 실효성 있는 정책방안을 제언하겠다는 게 손 회장의 생각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외부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국가 연구·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손 회장은 "국내외 기술혁신 생태계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과학기술 혁신정책의 전문가 플랫폼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국을 어떤 수단으로 압박할 지를 주목하고 있다. 최근 중국 AI 기업 딥시크발 쇼크 후 트럼프 대통령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나 중국에 대한 AI 칩 수출 통제 확대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I 분야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와 첨단기술 공급망을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중국이 기술 독립을 가속화하면서 결과적으로 AI 기술 혁신을 더욱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손 회장은 "미국의 제재 속에 중국이 보여준 성과는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첨단 기술 R&D 전략 수립 과정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은 정부 연구보조금 간접비 삭감 이슈가 뜨거운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보조금 중 간접비 비율을 기존 평균 40%에서 15%로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연구시설 유지, 실험실 운영, 장비 구입 등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연구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도 '직격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강하게 비판했다.

손 회장은 "이 같은 변화가 당장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미국 내 연구 프로젝트 중단과 연구 인력 감축 등이 일어나면 국제 공동 연구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연구 협력 감소는 곧 기술 교류 기회의 감소를 의미하며, 이는 한국이 연구 자립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연구자금 지원 체계를 갖추고, 주요 연구 협력국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손 회장은 "최근의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미국 내 연구환경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R&D 투자를 확대해 독자적인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고, 협력 파트너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딥시크가 독자적인 기술역량을 확보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독자 기술로 무장해야 한다. AI 전환 시대에 AI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전후방 산업에서 향후 부각될 새로운 기술·산업을 발굴해 우리가 우위와 장점을 가질 수 있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AI 패권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소버린 AI(주권적 AI)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AI 반도체, 대규모언어모델(LLM), 자율주행, 바이오 AI 등 핵심 기술 R&D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가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AI 핵심 인재 양성을 통해 전체 국가 기초체력을 높여야 한다는 게 손 회장의 생각이다.

저출산·고령화도 과학기술 혁신생태계가 맞닥뜨린 중대한 과제다. 여기에다 AI 및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우수 인재 유출과 이공계 기피 현상, 의대 선호가 지속되고 있다. 손 회장은 "가장 큰 문제는 과학기술 직군의 위상과 매력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를 해결하려면 MZ로 대표되는 청년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성장 경로와 합당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창업 활성화를 통해 신기술 분야의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출연연·대학 등 공공 연구기관의 채용을 늘리는 한편, 직무별 임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공개해 이공계 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게 손 회장의 생각이다. 단순한 예우나 명예보다는 경쟁력 있는 보상과 근무 환경을 조성해 이공계 인재들이 안정적인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가 혁신 경쟁력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선 반도체, AI, 바이오, 모빌리티 등 핵심 전략산업에서의 규제혁신이 시급하다. 손 회장은 AI 학습데이터 확보를 위한 개인정보보호 규제, AI 안전 및 윤리 기준 확립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한 상향식 규제혁신을 유연하게 확대해야 한다. 특히, 임시 허가와 실증특례 제도를 강화해 신기술과 조기 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신속한 규제 정비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부처가 합심해 국가전략기술의 발전 양상을 예측하고, 향후 예상되는 규제이슈를 발굴해 미리 정비하는 선제적 규제혁신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가 혁신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창업생태계 진화도 필수다. 특히 그 과정에서 기업의 기술혁신과 관련된 규제 간소화가 필수라는 게 손 회장의 신념이다.

그는 "특히 발전 속도가 빠른 신기술 분야는 규제 환경이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된다"면서 "최근 EU가 발표한 경쟁력 강화 5개년 로드맵인 '경쟁력 나침반'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규제의 간소화'다. 우리도 기업이 보다 기민하게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