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 확고했더라면 감히 그런 일이 있었을까. 지난 2월 7일, 35년 판사로 일하다 퇴임한 윤준 전 서울고등법원장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사태와 관련해 퇴임사에서 했다는 말이다. 사법부에서 폭력으로 법원 난입을 시도한 시위대의 잘못을 엄벌해야 한다는 단호한 의견이 압도적인 가운데, 퇴임하는 원로 판사가 외롭게 '내탓이오'를 외친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독재에 항거했던 인사들을 중형으로 다스렸던 사법부의 판결은 재심 끝에 파기되고 희생자들에게 적지 않은 보상도 해왔다. 총칼 앞에 무기력해진 사법부였지만, 일부 강골 판사들은 소신에 따라 판결하고 강압적으로 사법부를 떠나기도 했다. 억울한 사람이 없지 않았지만, 국민은 그런 사법부에 신뢰와 애정을 보냈다.

민주화 이후 사법부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신뢰를 잃어갔다.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사형을 선고할 만큼 법과 원칙에 충실했던 사법부가 세월이 흐르면서 이념이나 가치 편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명수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사법부의 흑역사가 시작됐다.

김 전 대법원장은 법원 내 진보적 성향 판사들의 연구단체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맡을 정도로 진보세력의 수장으로 알려졌다. 그는 임성근 판사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소추 계획을 알면서도 임 판사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는데, 이와 관련한 대화가 녹취되어 공개됨으로써 사법부 수장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밖에 법원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진보성향 판사들의 승진 기회를 높이고 핵심 보직에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중용하는 등 직권남용 의혹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기혼의 아들 내외를 대법원장 공관으로 불러들여 함께 거주하면서, 이른바 '땅콩 회항' 선고 직후 며느리가 일하는 한진 법무팀을 초청해 대법원장 공관에서 만찬을 가지는 등 공인으로서의 행태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누가 사건의 주심 판사를 맡느냐가 재판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정치인이 관련된 사건의 재판은 한없이 지연되면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황운하, 송철호 전 울산시장 등 진보성향 인사들의 재판은 5년이 넘어도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고, 윤미향 전 의원은 임기를 모두 마친 후에, 조국 전 의원도 의원으로 선출된 후에 최종 판결이 나옴으로써 '지연된 정의' 논란과 함께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타격을 입혔다.

사법부 신뢰를 무너뜨린 결정적 사건은 공수처에 의한 영장 쇼핑 의혹과 서울서부지법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급 이유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심사에서 유죄가 소명되지만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이라며 기각했던 법원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단 한마디로 헌재에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보다 훨씬 더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아닌가. 때문에 사법부는 형평성에 어긋난 결정을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부 신뢰 위기가 높아진 상태에서 헌재의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일부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음에도 헌재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결론을 내리는데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증인에 대한 추가 심문이나 피소추인의 반대 심문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고, 증인에게 묻는 질문에만 대답하라고 윽박지르는 모습도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헌재가 도출한 결론을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법부의 최종 결론이라고 그냥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사법부의 신뢰는 윤준 전 서울고법원장의 말처럼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마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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