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얼마든지 편한 길을 갈 수 있었다. 야당의 공세는 책임 전가가 가능했다. 거야가 남발하는 문제의 법률안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될 일이었다. 예산 삭감도 동면으로 겨울을 나듯 숨을 고르면 된다. 그렇게 남은 임기 2년 반을 '웰빙' 하면 될 일이었다. 부정선거 의혹도 눈감으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거야 공세의 핵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미 1심에서 중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고, 6개월 정도만 기다리면 피선거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컸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현 대한민국 정치기류와 국민정신이 자유민주정을 파탄낼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건 '자유주의자 윤석열'에게 실존적 문제였다. 이재명 한 사람의 '제거'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었다. 이 상황을 총탄이 날아가고 폭탄이 터지는 열전(熱戰) 이상으로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발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봤다. 사실 현대 국가 간 경쟁은 하드웨어 전쟁이 아닌 사이버·소프트웨어가 믹스된 하이브리드 성격을 띤다.
계엄 발령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도박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감행했다. 건국과 산업화의 아버지들로부터 길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이승만은 북한 공산세력 및 남한의 기회주의자들과 타협을 거부했다. 그가 비난을 무릅쓰고 남한 단독 건국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체제정비를 못한 채 남침에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뒤집어쓰고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화 전략을 밀어붙여 국가 기반을 다졌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 아니면 대한민국 자유민주 체제를 수호할 기회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생각은 이 나라가 종북·친중 세력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자유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로 바뀔 것이었다. 여기에 경종을 울리고 싸울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믿은 게 확실하다. 그는 방관자가 아니라 주재자이길 원했다. 역사가 직행하려면 사행하려는 물살을 거스르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누구는 이상에 따라 현실과 맞선다. 신념을 품고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 무모하리만치 몸을 던진다. 하지만 누구는 이상을 머릿속에만 넣어두고 손과 발은 따로 논다. 어떤 이는 바람이 오기도 전에 먼저 눕는다. 오직 창조적 소수자만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급류와 맞선다.
헛수고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결단을 내렸지만,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세우려 한 용기와 배포는 결코 가치 없다 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누구처럼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우리는 싸울 겁니다. 해변에서, 공중에서, 거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보지 못한 2030세대가 시위의 행동대장이 되어 선봉에 섰다. 그의 견인주의적 자세에 2030이 반응한 것인가, 아니면 타협보다 '지르고 보는 배짱'에 매료된 것인가.
그들이 윤의 외침에 호응해 서울 광화문·시청, 부산역, 동대구역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 "탄핵 기각, 윤석열 복귀", "자유민주주의 수호". 그들은 헌재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를 두고 서울 서부지법에서 발생했던 난입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나돈다. 만약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저항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를 '자연법과 헌법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이라 한다.
윤 대통령은 역사적 도박을 감행했다. 대한민국은 80년 헌정질서를 지키느냐, 변혁하느냐 사생결단의 국면에 섰다. 윤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겐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싸움"이다. 반면 반대 측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의 최후 발악"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대한민국은 이전과 같은 나라가 아닐 것이다. 역사의 분기점이 다가온다. 윤석열이 던진 불덩어리가 어느 쪽을 불사르든, 그의 도전은 영원히 역사에 새겨질 것임은 분명하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