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개인주의'가 문화적 문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밑바탕 작은 것에서 변화 시작… 학교서 토론·창의적 사고 장려해야
정수복 박사
정수복 사회학자·작가
"최근 우리 사회가 겪는 정치적 혼란의 배경에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문화와 의식 수준이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세대조차 일상의 민주의식은 부족한 것이 각종 현실 문제로 드러나는 거죠."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70·사진) 박사는 "정치적 민주화는 법과 제도를 통해 가능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 즉 문화적 문법이 바뀔 때 이뤄진다. 이제 제도의 민주화에서 의식의 민주화로 이행할 시기"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박사는 특정 대학이나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작가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TV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2007년 출간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으로 한국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하고, 2022년 펴낸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로 한국인문사회과학회 학술상, 한국사회학회 학술상, 최재석 학술상, 한국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작년 4월에는 저서 '이타적 개인주의자'를 펴냈다.
정 박사는 제도와 법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일상이 변화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적 문법의 변화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탄핵정국이 재연됐는데, 2017년 촛불집회 당시에도 그 뜻을 실현하려면 누군가를 탄핵하고 법적으로 처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문법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면서 "정치적 민주화는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사람들의 삶은 제도로만 개선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쟁 중심적이고, 외적 성공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는 불안과 열등감을 야기할 뿐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감을 떨어뜨린다. 이제는 이 틀을 깨고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중시하고, 상호 존중과 공정성이 바탕이 된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최근 저서 '이타적 개인주의자'에서 한국인이 지향할 삶의 방식으로 '이타적 개인주의'를 제시했다. 각자를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구속의 줄을 끊어버리고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타적 개인주의는 개인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면서도 타인과의 연대를 잊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가족 중심주의나 연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개인이 자신만의 길을 찾는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적 연대를 균형 있게 조화시킬 때 개인의 변화와 사회 전반의 문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각성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문화적 문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정 박사는 "개인주의를 말하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주로 떠올리는데 이타적 개인주의는 나와 타인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상호존중주의에서 시작한다. 각자가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면서 동등한 타인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 곳곳에 코드화된 문화적 문법에 기계처럼 따를 게 아니라 각자가 나를 발견하고,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발명하는 '셀프 액츄얼라이제이션'을 이뤄내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개인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자신의 권리만큼 존중한다. 이런 건강한 개인주의자들이 많아질수록 공적인 일이 공정하게 처리되고 발전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 목격하는 정치의 후진성은 이런 문화가 안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정 박사는 "같은 당 안에서도 친명, 비명, 친박, 비박 식으로 지도자 중심으로 구분하다 보니 각자가 이견을 내기 힘든 구조다. 일상에서 각자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정이 없이 학교에선 학생회장이 마음대로 하고, 정당은 지도자 중심으로 움직인다"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 잘못된 결과가 사회와 정치적 취약성으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그는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존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커서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면서 "학교 교실이나 가정에서 민주적인 성향을 가진 인간을 키워내지 못하면 성인이 돼서 갑자기 민주적으로 행동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일상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학교에서는 토론과 창의적 사고를 장려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상호 존중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개인의 의식이 바뀌고, 이는 곧 사회 전체의 문화적 변화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