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판결후 경영복귀 힘 실어줘 美 'AI 인프라 사업' 참여 논의 삼성, 초대형 투자 분위기 고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족쇄가 풀린 지 하루 만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전격 회동을 가지면서 빛난 '인공지능(AI) 동지애'를 보여줬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무죄 판결 후 첫 행보로 글로벌 CEO들과 회동을 가지면서, 특히 이들이 직접 서울을 방문해 이 회장을 찾았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중국 '딥시크 쇼크'를 겪는 글로벌 AI 시장에서 이 회장과 삼성전자의 위상이 방증됐다는 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회장은 4일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올트먼 CEO, 손 회장과 자리를 가졌다. 이번 3자 회동은 이 회장의 항소심 무죄 선고 이후 첫 공개 행보로, 이날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3자 회동을 위해 이날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3자 회동의 장소는 서초사옥 5층 코퍼레이트 클럽으로 알려졌다. 이 장소는 외부인 방문 시 미팅이 진행되는 일종의 접견실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올트먼 CEO가 SBVA(전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점심 식사를 진행한 이후 만남이 진행된 만큼 다과가 준비된 것으로 추측된다. 올트먼 CEO는 오후 2시께 서초사옥에 도착한 뒤 취재진과 만나지 않고 지하 주차장을 통해 회동 장소로 향했다.
회동에 깜짝 합류한 손 회장은 이날 오후 2시40분께 서초사옥에 도착해 취재진에게 "스타게이트 업데이트와 삼성 그룹과 잠재적 협력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에게 투자 요청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고 업데이트와 잠재적 협업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도 포함되냐'는 물음에도 "아직 모르고 이제 논의를 시작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르네 하스 CEO도 함께했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으며, Arm도 스타게이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은 오픈AI·소프트뱅크가 미 오라클과 함께 추진하는 AI 합작사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비롯해 AI반도체, AI인프라·서비스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올트먼 CEO는 한국 방문 전날 일본 도쿄에서 손 회장을 만나 일본 내 AI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동은 이 회장의 전날 항소심 재판으로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들이 직접 서울을 방문해 이 회장을 찾아 전격적으로 회동이 이뤄진 만큼,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 제대로 힘을 실어준 모습이다. 당초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을 시 해외 사업장 방문 등 글로벌 출장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오히려 AI 유력 인사들이 이 회장을 찾아왔다는 점에서 이 회장과 삼성전자의 글로벌 위상을 방증했다는 평도 나온다.
이 회장은 올트먼 CEO과 이 회장과 연락은 주고받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손 회장은 2013년, 2014년, 2019년, 2022년 방한시 이 회장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22년 10월 방한 당시에는 삼성과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ARM간 중장기적이고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전날 이 회장의 무죄 선고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AI·반도체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회장은 무죄 선고 단 하루 만에 이러한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의 발판을 만든 만큼 경제계의 기대치에 화답한 모양새가 됐다. 특히 중국 딥시크 쇼크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라는 평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회동은 최근 침체된 삼성전자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로 꼽힌다.
이 회장은 이번 만남을 시작으로 AI 분야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는 행보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초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과 협업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사티아 나델라 MS CEO와도 수시로 AI 사업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6월에는 2주간 미국 출장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이 회장을 자신의 자택으로 초대해 단독 미팅을 갖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저커버그 CEO 방한 당시에도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회동을 갖는 등 2011년 이후 8차례 자리를 가지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당시 미국 출장에서는 앤디 재시 아마존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사장 겸 CEO와도 회동했으며 2023년 5월엔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나는 등 AI·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핵심 인맥들과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회계 부정 혐의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