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르비아 노비사드에서 발생한 기차역 지붕 붕괴 참사를 계기로 정권의 부패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심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 참가자 수만명이 지난 1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북부에 있는 제2의 도시 노비사드로 집결해 이 도시의 다리 3개를 점거하면서 3개월 전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 가운데 수백명은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80㎞ 거리를 이틀간 걸어서 시위 전날 노비사드에 도착했으며, 밤에 전야제로 침묵시위를 벌였습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1일 노비사드에서는 콘크리트로 된 길이 35m의 기차역 지붕이 붕괴하면서 1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중상을 입었지요.
1964년 완공된 이 역은 노후화되면서 2021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중국 국영기업 컨소시엄이 보수 작업을 했습니다. 부치치 대통령은 이 역의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22년에 총선을 앞두고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를 초청한 가운데 명목상 '재개통'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붕은 공사를 마쳐 재개장한 지 불과 4개월만에 무너졌습니다. 이 사고는 세르비아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습니다.
이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는 정부의 무능과 뇌물이 지목됩니다. 세르비아 검찰은 유명 인권변호사 체도미르 스토이코비치가 참사를 일으킨 노비사드 기차역 부실공사 의혹에 대한 고발장을 내자 이를 근거로 수사에 착수, 이번 사고로 물러난 고란 베시치 전 건설교통인프라부 장관을 포함해 13명을 기소했습니다.
밀로시 부체비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이런 '꼬리 자르기'로는 세르비아 국민들과 시위대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스토이코비치 변호사는 "공사 계약에 투명성이 없었고 공개입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며 "사고가 일어나자 정부는 전면 은폐를 시도했다"고 가디언에 말했습니다. 그는 "시위를 주도해온 학생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감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으며 교수, 농부들까지 이들을 지지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정부와 부치치가 물러가기를 원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위는 정계의 부정부패 의혹을 규탄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정부의 강경 진압과 외세 개입 주장이 역효과를 낳으면서 대학생까지 가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했습니다. 정부의 강경진압은 백색테러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지난달 31일에는 베오그라드 도심에서 열린 15분간의 침묵시위 중에 자동차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해 1명이 다쳤고, 친정부 성향의 폭력배 일당이 대학생이 주축인 시위대를 공격한 적도 여러 차례입니다. 한 여대생은 폭력배가 휘두른 야구 방망이에 맞아 턱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정부 규탄 시위는 지난주에 세르비아 전국의 100여개 소도시와 마을로도 번졌으며, 법관들까지 시위 행렬에 가세했습니다. 미국 CNN은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고 참여하는 등 세르비아의 각계각층이 참여한 이번 시위에서 2000년 퇴진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독재정권의 말기를 연상케 하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세르비아는 총리에게 권한이 있는 의원내각제이지만 현재 실권자는 부치치 대통령입니다. 부치치는 그가 당대표로 있던 세르비아진보당(SNS)이 연립정부에서 최대 지분을 확보하면서 2012년 제1부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입각하고 실권을 쥐었지요. 이어 2014년 총선을 계기로 연립정부 총리직까지 거머쥐어 공식적으로 권좌에 올랐습니다. 2017년과 2022년 대통령으로 연속 당선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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