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화성 아리셀 공장과 인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를 일으켰던 리튬 배터리가 또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에는 김해공항에서 이륙을 기다리던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다. 기내 선반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찔했던 화재 사고에 놀란 국토교통부가 뒤늦게 '리튬 이온 배터리' 운송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휴대폰·노트북·태블릿·전자담배와 같은 전자제품에 사용하는 유용하고 편리한 리튬 이온 배터리가 항공사에게는 골칫거리가 돼버렸다. 2020년부터 작년 8월까지 국내 항공사의 기내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 때문에 발생한 화재가 13건이나 된다. 10개 국적 항공사 중 8개 항공사가 배터리 화재 사고를 경험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도 골치를 앓고 있다. 2020년 39건이었던 배터리 화재가 5년 사이에 78건으로 증가했다.

항공기가 화재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리튬 이온 배터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은 꼭 필요한 것이다. 승객도 안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규정에서는 그런 절박감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100Wh(와트-시) 이하의 보조배터리를 무려 5개까지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승객 입장에서도 규정이 너무 느슨하다. 160Wh 이하의 보조배터리 2개를 허용하는 규정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는 보조배터리는 대부분 75Wh 이하이기 때문이다.

민간 항공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국토교통부나 항공안전 전문가가 첨단기술인 리튬 이온 배터리에 대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보조배터리를 비닐봉투에 넣기만 해도 외부로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발언이나, 보조배터리의 '충격·압력'이나 '과충전'(過充電)을 걱정하는 수준의 인식으로는 항공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충전이 불가능한 1차 배터리인 단추(버튼) 형태의 '리튬 금속 배터리'에 대한 규정은 최소화할 수 있다.

보조배터리의 화재·폭발은 대부분 금속 물체에 의한 '외부' 단속(斷續, short circuit)보다 배터리 내부에서 발생하는 '내부' 단속으로 발생한다. 화학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활용하는 전통적인 배터리와 달리 전해질 속에서 리튬 양이온의 이동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필요한 '분리막'의 손상이 화재·폭발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분리막의 손상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외부의 충격·압력에 의해 시작된 손상의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느릴 수 있다. 탑승할 때는 멀쩡했던 보조배터리가 비행 중에 갑자기 폭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품질은 제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고가의 휴대폰·노트북·태블릿에 사용하는 고급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품질을 믿기 어려운 값싼 보조배터리를 더 경계해야 한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보조배터리를 최대한 방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화재·폭발 위험성은 충전율에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탑승 전에 충전율을 30% 이하로 규제하라는 것이 국제민항기구(ICAO)가 올해부터 요구하는 새로운 권고안이다. 국토교통부와 항공사가 그런 사실을 탑승객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특정 국가에서 생산되는 '비인가' 보조배터리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난 2022년 ICAO의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는 보조배터리의 품질 인증 절차를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 국가기술표준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일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수조'(水槽, 물통)를 기내 여러 곳에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리튬 이온 보조배터리는 많은 양의 물이 들어있는 물통에 넣어 버리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보조배터리는 발열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휴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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