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더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양자(量子). 에너지의 최소 단위인 양자라는 말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익숙한 단어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중첩과 얽힘의 양자 물질의 고유 특성을 이용해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 세계의 현상을 탐구하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란 일반인들은 더더욱 어렵다.

이처럼 익숙하나 생소한 양자가 요즘 첨단산업 분야에서 제일 핫하고 트렌디한 분야로, 그야말로 추앙받고 있다. 가히 '양자 전성시대'가 왔다고 비유할만 하다.

더욱이 올해는 양자가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1925년 독일 이론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 이론을 확립한지 100년이 되는 '양자역학 100주년'을 맞은 해다. 이를 기념해 유엔(UN)은 올해를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지정했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 2025'에서도 양자컴퓨팅 분야가 신설돼 미래 첨단기술을 이끌 총아로 급부상했다.

뿐만 아니라 CES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의 '20년 후 양자컴퓨터 상용화' 발언이 시기 논쟁을 불러와 양자 관련 주식이 급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세계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는 젠슨 황 대표의 이같은 발언의 속내는 미래 세상을 바꿀 양자의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잠재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AI 주도권을 양자에 뺏기지 않겠다는 전략적 언사가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AI가 챗GPT 등장을 계기로 눈부신 기술 발전을 통해 'AI 일상화'를 앞당겼듯이 양자 역시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급속한 기술 혁신이 진행되면 AI를 넘어 '양자 일상화'는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지난달 구글이 내놓은 양자컴퓨터의 핵심 칩 '윌로우' 성능을 보면 결코 양자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기존 컴퓨터가 10셉틸리언(1셀팁리언=10의 24제곱)년 걸려야 풀 수 있는 계산을 단 5분 만에 해결하는 어마무시한 성능이다. 우주의 나이를 초월하는 시간에 해당하는 10자년 걸려 풀어야 하는 문제를 5분에 푼다는 것인데, 과연 이게 인간의 두뇌로 상상조차 가능할까.

이 모든 게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최대 기술적 난제인 큐비트(양자의 기본단위)가 늘어날수록 오류가 쉽게 발생하는 것을 양자오류 수정기술로 해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양자 분야의 기술 개발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양자컴퓨터가 머지 않아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면 지금과는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양자 특이점'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기술이자 게임 체인저로 양자가 융숭한 대접을 받는 시대에서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양자 이니셔티브 정책'을 보면 숫자놀음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2030년까지 기술 수준을 최선도국 대비 80%, 양자핵심인력 1000명, 정부 간 협력 양해각서(MOU) 7건 이상, 양자 활용·공급기업 500개 이상 등을 달성하겠다는 '백화점식 청사진'으로 우리의 양자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래의 양자기술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이 모든 국가적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해 사활을 걸고 총성없는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목표 달성을 위한 숫자에만 집착하는 듯 하다.

안 그래도 예산, 기술,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양자 선도국에 비해 열악한 우리가 이런 전략으로 감히 그들을 추격하기는 커녕, 넘어선다는 건 언감생심일 것이다.

정부가 예타 면제를 받아 230억원을 들여 올해 새로 추진하는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도 플래그십(기함)으로 부르기엔 너무 옹색해 보이는 규모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가 양자 선도국을 똑같이 따라해선 '회색 코뿔소'(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양자 분야에서 승산 있는 게임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닌 '온리 원'(Only One) 전략일 듯하다.

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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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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