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별세 전 추도사 작성…아들이 카터 장례식장에서 대독
대통령 전용기를 함께 탄 지미 카터(좌측)와 제럴드 포드(우측)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대통령 전용기를 함께 탄 지미 카터(좌측)와 제럴드 포드(우측)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미 카터, 재회를 기다리고 있소. 우린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지 않소."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선 특별한 메시지의 추도사가 낭독돼 추모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추도사를 쓴 이는 지난 2006년 향년 93세로 별세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1913~2006년, 미국 제38대 대통령)이었다.

지난 1976년 대선 때 맞붙었다가 퇴임 후 수십년 간 우정을 유지했던 두 전직 대통령은 생전에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추도사를 보내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포드 서거 후 19년이 흘러 그가 카터 앞으로 작성해둔 추도사가 이날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카터 역시 이 약속을 지키려고 포드에 대한 추도사를 미리 준비해뒀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아들인 스티븐이 대독한 추도사에서 정치적 라이벌이자 생전에 유정을 나눴던 카터와의 인연, 그의 됨됨이 등을 회고했다.

포드는 1976년 대선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이 자기 신경을 건드렸다면서도 "그는 내 정치적인 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성공적으로 지적해냈다"라고 회상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부통령이었던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포드 전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도덕적, 정치적, 지적으로 파산했다"고 비판했다. "무능하다"는 표현도 있었다.

그러나 포드 전 대통령은 "그때는 대선 결과가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 우정을 가져다줄지 몰랐다"면서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과정을 소개했다.

1981년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안와르 사다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함께 타고 오가는 과정에서 악연을 씻고 우정을 쌓게 됐다는 것이다.

포드는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카터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퇴임한 대통령의 '특권'이라며 정치 활동 중 서로에게 쏘아댔던 정치적 공격을 모두 잊기로 약속했다고 적었다.

포드는 추도사에서 카터에 대해 "정직과 진실은 지미 카터라는 이름과 동의어였다"며 "정직은 그에게 열망이 목표가 아닌 영혼의 일부였다"고 평가했다.

퇴임 후 여러권의 저서를 내놓은 카터에게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목화를 따는 것보다 낫다'라고 답했다"면서 "그가 글쓰기를 즐겼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의견을 특정 유권자나 잠재적 기부자에 맞춰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포드는 또 이렇게 적었다. "지도를 보면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포드의 고향)와 조지아주 플레인즈(카터의 고향) 사이는 꽤 먼 거리입니다. 하지만 거리는 마일이 아니라 가치로 측정할 때 사라집니다. 지미와 내가 서로를 소중한 친구로 여기기 이전부터 우리는 적대적 관계로 서로를 존중했으며 그것은 서로 공유하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터가 남긴 평화와 자비의 유산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강조한 포드는 그의 오랜 동료에게 "재회를 기다리고 있소. 우린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지 않소. 오래된 친구여,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오"라는 인사로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45대·47대 당선인), 조 바이든(현 46대) 등 전·현직 대통령이 참석해 증오와 분열로 얼룩진 현재 미국 정치에 잔잔한 울림을 던지는 포드의 추도사를 듣고 있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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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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