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여보, 너무 많이 보고 싶어요." "아빠. 내가 너무 사랑해."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과 지인들이 쓴 손 편지들이 무안국제공항 계단 유리 난간에 붙었다. 꼭꼭 눌러쓴 글들마다 눈물이 서려있다. 179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다. 충격과 슬픔은 걷힐 줄 모른다. 참사 일주일만에 희생자들 대부분은 유족들 품으로 돌아갔고 장례식이 잇따라 엄수됐다.

지난달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항공업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고 기종은 보잉 737-800이었다. 이 기종은 상업용 항공기 시장에서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지만 최근 일련의 사고와 결함으로 신뢰성이 추락했다.'B737-800 포비아'도 생겨났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는 보잉과 항공업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게 만든다.

보잉은 한때 미국 최고의 기업 중 하나였다. 보잉은 1916년 7월 25일 윌리엄 보잉이 미국 시애틀에서 창립한 항공기 제작 회사이자 방위산업체다.특히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30년대와 1940년대 항공기 개발을 확대하며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과 함께 미국의 3대 항공우주 방위 산업체로 꼽힌다.

이번 대형 참사로 '세계를 연결'해 온 보잉사에 대한 신뢰도는 또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 보잉의 이름은 이제 혁신보다는 '위기의 이름'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조류충돌이 사고 원인이었고 비행장 콘크리트 둔덕이 참사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번 참사로 보잉 여객기의 안전성 논란 재점화는 불가피해졌다.

보잉 737-800은 지난 수십 년간 '신뢰할 수 있는 항공기'로 인정받아 왔다. 항공 데이터분석 기업 시리움에 따르면 737-800은 전 세계에서 약 4400대가 운행되고 있다. 전체 운항 여객기 중 17%를 차지한다. 국내에선 101대가 하늘을 날고 있다. 그야말로 보잉사의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에 발생한 737 맥스 사고 이후 보잉 여객기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커져왔다. 2018년 10월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추락사고 이후 안전성 논란은 본격화됐다. 당시 현지 항공사 라이온에어의 737맥스가 이륙 13분만에 추락해 탑승객 189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때도 기체 결함 문제가 불거졌다.

또 5개월 후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이륙한 동일 기종이 추락해 15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4년 1월엔 알래스카항공이 운행하는 737맥스 동체에 구멍이 뚫려 긴급회항하기도 했다. 이후 5년 동안 보잉은 230억달러(약 33조7502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결국 경쟁사인 유럽 항공기 제작업체 에어버스에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보잉 여객기의 잦은 사고 원인으로 비용 절감에 매몰된 기업 문화를 지적한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보잉은 수천 명의 직원을 줄였다. 공급망 혼란으로 회복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부품 제조 공정에서도 구멍이 생겼다. 보잉은 2000년 이후 외주 비중을 2배 이상 높였다. 비용 절감에 안전문제는 후순위로 밀렸다. 더 많은 절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본사를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옮기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수익성을 추구하는 MBA 출신 경영자와 엔지니어 사이에 생겨난 3200㎞가 넘는 물리적 거리감은 정서적 거리감으로 이어졌다.

보잉은 신뢰를 되찾는 여정의 시작에 섰다. 지난 주 별세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해군 시절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라는 상사의 질책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과연 보잉사는 최선을 다했을까. 보잉은 기술과 안전에 대한 투자는 문제 없는지, 기업윤리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신뢰의 날개가 다시 펴진다.

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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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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