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언론은 세밑에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의 무안공항 추락사고를 아주 오래전 일처럼 간주하고 있다. 비극적인 179명의 죽음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첫 영장 집행 시도가 더 뉴스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기증 나게 빠른 장면 전환이다.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동의할 수 없는 비상식적 행동이었다. 그로 인해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수사기관으로부터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민 다수에 의해 선출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헌재)의 판단이나 공수처의 체포 및 구속 절차가 기한에 쫓기거나 국민적 반감에서 진행되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그 과정이 편법이나 절차적 문제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어선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하기 힘든 국민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 시도는 다소 성급한 면이 있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권한과 영장 발부 절차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내란혐의 수사는 헌재의 결정 이후 수사를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윤 대통령 내란혐의 수사는 헌재 판단을 돕는 성격도 존재했다. 지난해 12월 14일에 통과된 탄핵소추안에서 첫 번째로 명시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과 국헌 문란의 내란 범죄 행위'에 대한 수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는 3일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 혐의를 사실상 철회하였다. 이제 윤 대통령의 체포 및 조사, 구속영장 청구를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

공수처는 물론 6일 윤 대통령 체포를 재시도할 수 있고, 추후 영장을 재발부받아서 언제든 체포 시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국가 불안과 국민 분열이 가속화된다면 공수처 스스로 해악적인 기관이 된다. 이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윤 대통령 체포를 찬성하는 '민주시민'과, 체포를 반대하는 '애국시민' 간 갈등의 장소가 되었다.

공수처는 현직 대통령 최초 체포 수사라는 공명심을 잠시 접어두고 헌재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속이 상징하듯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하는 국가이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 간의 갈등과 분열에 대한 치유이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국민의 마음은 해질 대로 해졌다. 많은 국민이 일상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친구와 가족 간에도 정치 문제로 괜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폭력적이고 경멸적인 언어가 난무한다. 생각과 입장이 다르다고 '내란 동조자', '내란 공범'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일부 야당 의원과 유튜버들은 성급한 선동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권도, 언론도, 사회도 너무 과열되어 있다.

19세기 미국은 독립 이후에도 영국으로부터 지속적인 간섭을 받았다. 1812년 영국의 간섭에 반발, 2차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메릴랜드주 항구도시 볼티모어에서는 전쟁 찬성 열기가 상당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사를 주민들이 습격해 인쇄시설을 부수고 방화했다. "우리와 뜻이 다르다면 적"이라고 선동하는 신문도 나타났다. 다수 의견이 절대적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다수가 소수보다 존중받는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지성과 지혜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근간에도 이러한 다수결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다수가 의견이 다른 소수를 억압하고 경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훗날에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이를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가 다수의 폭정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오롯이 '헌재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논란 끝에 2명의 재판관이 추가 임명되면서 재판관 8명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심리와 판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헌재 재판관의 성향에 따라 탄핵 인용 혹은 기각이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은 사법 불신만 키우게 된다. 법관의 양심, 법률적 지식, 합리적 판단을 믿기 때문에 국민은 헌법재판관에게 어려운 결정을 위임한 것이다.



헌재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철저한 증인심문과 냉철한 법리 다툼으로 최종 판단에 도달하기를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승복은 국민통합의 새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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