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경 유진성형외과 기업부설연구소장
"생명은 창조될 수 있는가? 생명 그것은 단지 우연일 뿐. 미세한 세포를 복제하는 화학적 유전자 돌연변이, 유약한 인류를 변화시켜 무한의 존재로. 인간 생명을 창조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다소 난해한 질문을 담은 이 글은 과학논설이 아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일부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뮤지컬 주제와는 달리 다소 무겁고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가 이 뮤지컬을 처음 접하고 놀랐던 것은 다소 어렵고 복잡한 과학 윤리를 너무나 매력적으로 작품에 담아서였다.

이 작품은 최초의 과학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메리 셸리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다. 소설 자체도 명작이다. 1818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작품은 당시 익명으로 활동한 18살의 소녀 메리 셸리였다. 어린 소녀가 담아낸 이 과학철학은 굳이 작가의 나이와 성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시대를 한참 앞서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잘 담아낸 우리나라 뮤지컬 창작진에 나는 열광했다.

생명은 과연 창조될 수 있는가? 1818년의 메리 셸리의 작품에 담긴 이 질문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면서도 절대 넘어서면 안 되는 금기의 대상 중 하나였다. 200년이 훌쩍 흐른 지금. 2024년 과연 생명은 창조될 수 있는가? 유전학부터 인공장기까지. 일단 윤리적인 문제를 빼고 보면 생명 창조는 사실상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에 왔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부패하지 않은 시체와 머리를 붙이고 전기 충격을 준 후 생명을 창조한다. 아미노산 합성 원리까지 등장하는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은 2024년에도 매우 신박하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1800년대에 쓰인 작품이다. 그 시대 상상하기 어려웠던 놀라운 과학적 발상이 문학작품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도전적 발상은 미래의 과학자들에겐 현실이 되었다.

1953년 인간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고 1996년에는 영국에서 생명 복제 기술을 통해 세계 최초의 복제생명체가 탄생했다. 바로 양 돌리(Dolly)의 탄생. 전 세계가 충격적으로 이 탄생을 뉴스로 접했다. 그리고 바로 2000년 6월. 인간 게놈(유전체) 지도가 발표된다. 인간 생명체를 복제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작품 속에서 물리학 박사였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극 중에서 교수형에 처한 친구 앙리 뒤프레의 머리를 몸에 이어 붙이고 전기충격을 줘 다시 숨을 쉬는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명장면이 지금은 게놈지도와 양 돌리를 통해 조금은 다른 형태이지만 실현 가능해진 것이다. 빅터 프랑켄은 노래한다. "새 생명의 시대. (중략) 너의 창조주가 명하노니 눈을 떠라 일어나라." 생명은 창조된다.

과연 생명은 창조되어도 되는가? 최초의 복제 동물 양 돌리는 난자와 난자를 이식한 생명체다. 암컷 양의 체세포에서 핵을 꺼내고, 핵을 제거한 다른 양의 난자에 넣어서 전기 충격을 준다. 이렇게 되면 보통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한 것처럼 세포분열이 일어난다. 수정란이 되면 대리모의 자궁에 넣어 자라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실 이 방식으로는 양 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이 태어났다.

놀랍게도 2002년에는 우리나라 박세필 박사가 사람 체세포를 소의 난자에 이식해 이종 배아복제에 성공했다. 쉽게 말하면 인간과 소를 결합하여 배아복제를 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인간의 핵만 사용하고 소는 유전정보를 제거하여 사용했다. 이 배아는 세포분열을 통해 장기와 몸을 만들게 된다. 즉 양 돌리처럼 대리모를 통해 자궁 속에서 자라게 되면 아기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직은 이렇게 진행하지 않고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만 뽑아내게 된다. 이 줄기세포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이식되는 것이다. 태아가 될 수 있는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만 뽑아낸다.

오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설계되어 태어난 맞춤형 아기도 있다. 2002년 영국에서는 4세의 찰리 휘터커가 희소 빈혈증에 걸린다. 부모는 찰리의 치료를 위해 골수 조직이 일치하면서 희소병 유전자가 없는 맞춤 아기의 출산을 국가로부터 허가받는다. 영국 정부는 허가하지 않았다. 맞춤 아기 출산이 가능한 미국에서 부모는 유전자 맞춤형 아기를 낳고, 아이의 골수는 찰리에게 이식되었다.

생명은 창조되고 있다. 심지어 필요에 맞게 설계되어서 말이다. 이 지점까지 오면 과학 윤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배아는 생명체인가? 그럼 배아를 죽여도 되는가? 이러한 시도가 인류에게 안전할 것인가? 혹은 그렇게까지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가? 라는 여러 질문이 생겨난다.

필자에게 '프랑켄슈타인'은 그러한 근원적인 질문을 많이 던진 작품이다. 작품에서 빅터 프랑켄은 소중한 친구 앙리 뒤프레를 재창조하는 것에 성공한다. 친구를 살려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앙리는 온 몸에 끔찍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말조차 못하는 뒤틀린 괴물이다.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추격한다.

재창조된 앙리는 의리 있고 총명하던 인간 앙리와는 다른 그 무엇이다. 왜 그 자신이 태어났는지 왜 이렇게 외로운 존재여야 하는지 사람들이 왜 자기를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다.

작품의 초입에 빅터 프랑켄이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에 본인은 신의 존재를 철저히 믿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는 바로 세상의 엄청난 모순과 비극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괴물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앙리와 앙리를 살리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 빅터는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순간에도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생명 창조는 과연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는 이를 허용할 것인가? 적어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생명 창조의 기술에 성공한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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