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진 고령층 빈곤율 40% 넘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 OECD 평균인 14.2%의 3배 상회 은퇴인구 빈곤율 근로인구의 4배 기초연금 월평균수급액 28.6만원 기간 짧을수록 수령액은 적은데 늦거나 아예 가입 못한 사람 다수 저소득-고자산 지원은 축소하고 복지제도 손질해 삶의 질 높여야 노인일자리 확대·고도화도 필요
28일 노인일자리 참여 희망 노인이 제주시니어클럽에서 참가신청을 하고 있다. <이민우 기자>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들은 1950~1970년대 경제 성장기에 청년·중장년층으로 활동하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노년기에 접어들며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정작 자신들의 노후는 불안정하며, 여전히 가난 속에 놓여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다. OECD 평균인 14.2%를 3배 가까이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한강의 기적은 분명 한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분배의 형평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당시 중장년층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기에 저축할 여유 없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은퇴 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2014년 7월 기초노령연금을 확대 개편한 기초연금이 실시된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 중구지사에서 한 노인이 기초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청의 '2024 고령자 통계'를 보면, 66세 이상 은퇴연령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은 39.7%다. 18~65세 근로연령인구의 빈곤율(10.0%)과는 4배가량 차이가 난다. 현재 노인들의 빈부격차는 청년·중장년층 대비 심각하다. 은퇴연령인구의 '소득 5분위 배율'은 7.11배로 근로연령인구(4.98배) 대비 더 높았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소득 상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을 소득 하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고도 경제성장기 당시 분배 형평성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연금 제도의 사각지대도 원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됐지만, 초기에는 가입률이 낮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51.2%로 절반 정도만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인구고령화와 제도 안착에 따라 수급률은 늘고 있으나, 2023년에서야 비로소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노인 인구 절반이 국민연금을 받게 됐다.
정부는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주고 있으나, 이를 포함해도 노인 빈곤 실태는 통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KOSTAT 통계플러스' 겨울호에 따르면, 노인 소득 하위 70%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포함해 기준 연금을 1개 받는 65세 이상 노인은 818만명이다. 고령자 중 약 90.4%가 1개 이상의 연금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의 월평균 수급 금액은 2022년 기준 65만원 수준이었다. 기초연금 및 국민연금 제도 변경 등으로 전년 대비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한 달을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연금에서조차 빈부격차가 발생 중이다. 연금을 받는 노인 중 절반 이상은 42만원보다 적은 연금을 받았다. 수급액을 금액 순서로 나열했을 때 한 가운데를 나타내는 중위수급액은 41만9000원이었다. 연금액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의 영향을 받는다. 국민연금에 가입기간이 짧았거나, 가입을 하지 못한 고령일수록 연금 수급액은 적었다. 전체 고령자의 68.2%는 기초연금을 받고 있었다. 기초연금만 받는 고령자는 전체의 35.6%였다. 이들의 월평균 수급액은 28만6000원 수준이었다.
부모 부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자식으로써 마땅히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읜 '2022년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 제10장 복지 인식 부가조사를 보면, 부모 부양의 책임은 자식에게 있다는 의견에 대해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12%에 불과했다.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중도 18.27%에 그쳤다. 5명 중에 1명 정도만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자식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대한다'고 답한 비중은 41.86%였다. 7.28%는 '매우 반대한다'고 답했다. 더욱이 저소득층의 경우 '반대한다, 매우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은 50.74%로 절반을 넘겼다. 2007년 당시 부모를 모실 책임은 자녀에게 있다는 데 동의한 사람은 52.6%였다. 반대는 24.3%에 불과했다. 15년 사이 사회 인식은 크게 변화했다.
2000년 4월 전국민연금 실시 1주년 기념식 모습. <국민연금공단 제공>
빈곤 해결을 위해서는 현재 노인 소득 하위 70%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지원 대상자의 규모가 증가해 재정부담이 커질 수 있을 뿐더러, 주는 대상은 많지만 지급액이 적어 노후소득 지원 측면에서도 효과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KDI 포커스 '소득과 자산으로 진단한 노인빈곤과 정책 방향' 보고서를 통해 재산이 없는 저소득 노인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정부는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을 노인 단독가구 월 228만원, 부부가구 월 364만8000원으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홀로 사는데, 228만원이면 연금 안 줘도 된다, 재산·수입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치면서 KDI 주장의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승희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세대 간 '저소득-저자산' 유형 비율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1940년대생 및 그 이전 출생 세대에서 '저소득-저자산 유형 비율이 특히 높았다"며 "노인빈곤 수준이 세대에 따라 다른 것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세대 간 소득 격차와 세대별로 다른 노후보장체제의 성숙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취약계층 지원을 집중하기 위해 기초연금은 재산을 고려한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지급하고, '저소득-고자산'에 대한 지원은 축소해야 한다"며 "기초연금에 투입했던 재원을 다른 노인복지 제도에 투입해 고령층의 삶의 질을 올려야 하겠다"고 제언했다.
노인일자리의 확대·고도화도 대안 중 하나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의 활동적·생산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65세 이상(일부 사업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중앙정부·지자체·민간이 협력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올해 노인일자리를 작년 대비 6만8000개 더 늘렸다. 총 2조1847억원을 투입해 109만8000개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1966년 부산 대한조선공사 작업광경. <국가기록원 제공>
노인일자리는 독거·저소득·저학력 노인들의 '버팀목' 역할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간한 노인일자리사업 추정 및 시도별 특성 분석 보고서 'KORDI ISSUE PAPER'를 보면,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중 3분의 1가량인 32.2%는 1인 가구였다. 소득이 중위 소득의 50% 미만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비율은 44.5%였다. 사업 참여 노인 중에는 중졸 이하 학력 보유자가 65.6%로 가장 많았다. 고졸 이상의 학력 보유자는 34.4%였다. 수요층의 72.6%는 정보화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가원 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노인들의 근로희망 사유로는 '생계비 마련'이 49.4%로 가장 많았다"며 "65세 이상 노인 수 증가, 건강수명 연장, 사회참여 욕구는 증가하는데, 노후소득보장 등 사회보장체계는 부실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인일자리사업 정책환경 변화에 따른 정책수요 규모에 대해 지속적이고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며 "수반되는 예산, 인력, 수행체계 인프라 등 정책 여건의 조성과 민간자원의 적극적인 투입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