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첫날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들이 사의를 밝혔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도 사직서를 냈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전날 국회 추천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을 임명한 데 대한 항의 성격이다. 국정은 더 꼬여가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재도약이냐 아니면 추락이냐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 피와 땀으로 쌓아온 산업화와 민주화가 자칫 형해화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나라밖은 구한말처럼 격변의 시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적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그 틈을 타 러시아와 군사협력으로 미사일이나 잠수함 등 첨단 군사기술을 넘겨받으려 한다. 오는 20일(현지시간) 2기를 시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공공연히 외친다. 외교안보와 경제 모두 백척간두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민주 공화정의 위기 부른 정치의 타락

모든 위기는 정치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렇다. 2025년 대한민국의 최대 난제는 정치 리더십의 부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 내내 개인의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한 정부 무력화에 힘을 쏟아왔다. 무려 29차례 정부 주요 인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윤 대통령 ,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최재해 감사원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물론 대북 불법 송금, 대장동 비리 혐의 등을 수사한 검사까지도 대상이었다. 또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 시장경제 원리에 반한 법률 제·개정을 밀어붙였으며, 공직선거법 위반 등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것 자체를 유야무야하게끔 아예 선거법 자체를 개정하려는 행태조차 서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오르고서도 '여의도 이 대통령'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입법부가 전횡할 수 있도록 이 대표에 판을 깔아준 건 윤 대통령 자신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온갖 의혹, 검찰이나 학연에 의지한 편협한 인사, 이준석 한동훈 등을 껴안지 못한 뺄셈 정치, 전문가와 참모들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식 정책 등 무능한 국정 운영은 국민들을 떠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뜬금없는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추락시켰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다. 윤 대통령이 없었다면 이 대표도 없었을 것이고, 이 대표가 없었다면 윤 대통령 또한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정의 위기'이다. 한쪽은 '다수당의 폭정'으로, 또다른 쪽은 공(公)보다 사(私)를 앞세운 국정의 사사화(私事化)로 공화정을 위협한다. 헌법과 법률이 아닌, 개인 정치인에 의해 나라가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가짜 선정적 뉴스를 양산하는 유튜버들이 가세하면서 국민들의 갈등을 부채질한다. 광복 직후 우익과 좌익으로 갈라져 혼돈에 빠졌던 모습과 유사하다. 과거 정치는 그렇지 않았다.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은 서로 싸우긴 했지만 국익을 위해선 협력할 줄 알았다. 그런 정치문화가 사라졌다.

한치 앞 안보이는 경제… 1%대 저성장이 '뉴노멀'

이런 와중에 경제 전망도 올해처럼 불투명한 적이 없다. 1%대 저성장은 '뉴노멀'(새로운 일상)이 됐으며, 대한민국의 성장은 이미 끝났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는 말도 생겨났다. 잠재성장률 또한 올해 1.8%에서 2040년대 0.6%로 추락할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고비용 구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개혁이 미흡한 까닭이다. 재정적자와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과 자영업 위기 등으로 금융사의 부실은 확대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또한 갈수록 줄어든다. 수출도 비틀대는 모습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의 비상(飛翔)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뭘 먹고 살지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를 대상으로 무역 보복을 벼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재편되고 엔비디아와 TSMC가 질주하는 동안 국내 반도체 산업은 주 52시간 근로 제한에 묶여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자유롭게 일할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시장친화적 개혁을 통해 활짝 꽃이 핀 독일 경제는 메르켈 집권 16년동안 추락, '유럽의 병자'가 됐다. 계획경제로 경제가 변모하면서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대한민국의 두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성장률은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 우리가 병목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꾸준한 혁신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개혁 등 고비용 구조의 개혁없인 대한민국의 재도약은 불가능하다.

정치 개혁·국가 리더십 재정립이 위기 극복 첫걸음

2025년 을사년, 위기 극복 여부는 정치 개혁과 국가 리더십의 조속한 재정립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등과 분열의 현 정치 시스템과 문화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여야는 당장 정쟁을 멈추고 오로지 민생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는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국가 리더십의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법부 또한 윤 대통령, 한덕수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심판을 신속히 진행해 불투명성을 줄여줘야 한다.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판결도 빨리 진행,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다수당의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정치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건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역사는 한 개인 정치가가 아니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가려내 도태시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지도자를 뽑는 건 국민들에 주어진 책무다. 위기를 앞두고 뭉치는 건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준 DNA다. 끝없는 여야의 정쟁을 멈추게 하고, 새해를 혼란과 좌절을 뛰어넘어 위기 극복의 해로 만드는 건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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