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지난 25일 발생한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러시아에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알리예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자국 TV 연설을 통해 "우리의 비행기는 우발적으로 격추됐다"면서도 "러시아가 그 책임을 인정하고 관련자를 처벌하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불행하게도 사건 발발 직후 3일간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조류 충돌', '가스 실린더 폭발' 등 터무니없는 설명만 들었다"면서 "사건을 감추려는 시도가 있었던 건 명백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객기는 지난 25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출발, 러시아 그로즈니로 향하던 중 갑자기 항로를 변경해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다가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에서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습니다.
여객기에는 아제르바이잔인 37명, 러시아인 16명, 카자흐스탄인 6명, 키르기스스탄 3명 등 6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38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고 직후 러시아 측은 여객기가 새 떼와 충돌했다고 주장하는 등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전날 러시아 방공 미사일의 오인 사격으로 이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아제르바이잔 당국의 예비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객기가 지나던 러시아 북캅카스 상공은 최근 몇 주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됐던 지역이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 밤까지 우크라이나 드론 59대를 격추했다고 밝혔고, 여객기 추락이 발생하기 불과 3시간 전에도 우크라이나 드론 1대가 그로즈니 서쪽 블라디캅카스 상공에서 격추됐습니다.
아제르바이잔 항공의 생존 승무원 줄푸가르 아사도프는 뉴욕타임스에 "체첸에서 착륙을 세차례 시도했고 그 이후 여객기가 이상하게 운항하기 시작했다"며 "비행기 밖에서 이상한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알 수 없는 파편이 날아와 팔에 상처가 나 수건으로 상처를 감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또다른 생존 승무원 아이단 라힘리 역시 "두 번의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파편이 기체 벽을 뚫고 객실 내부로 침투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놀란 승객들이 공포에 질려 자리에서 일어서 웅성이며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승객인 수브혼쿨 라키모프는 "쿵 소리가 들린 후 비행기 한 쪽 벽면이 파손된 모습을 봤으며, 비행기가 무너질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며 추락하기 직전의 순간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것이 내 마지막 기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파편에 얻어맞았고 몸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주변 사람들도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숨진 아제르바이잔 항공기 추락 사고와 관련해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습니다. 사고 여객기가 러시아의 방공망에 걸려 격추됐다는 의혹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크렘린궁은 양국 정상의 통화 내용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사고 여객기가 추락하기 전 그로즈니에 착륙을 시도하려 할 때 러시아 방공망이 가동 중이었다고 설명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전날 아제르바이잔 항공은 여객기 추락 사고에 대한 예비조사 결과 "외부로부터 물리적·기술적 방해"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같은 날 러시아 항공당국도 여객기의 목적지였던 그로즈니 쪽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공격에 대한 '대응 조처'가 있었다고 시인했습니다. 사실상 여객기가 러시아의 방공망에 걸려 격추된 것으로 결론이 좁혀진 셈입니다.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사고기가 방공망에 피격된 이후에도 비상착륙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로 인해 피해 규모를 줄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날 알리예프 대통령은 이고르 크슈냐킨 기장 등 사고로 숨진 여객기 운영진을 추모하고 영웅 호칭을 부여했으며 사고 대응에 나섰던 구조대원과 의료진 등에게도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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