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미래형 청정연료라고 믿었던 '수소'가 갑자기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청주의 수소 충전소에서 수소 버스가 폭발해 3명이 다쳤고, 나흘 뒤인 27일에는 부산 도심의 수소 충전소 배관실에서 누출된 수소 때문에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우연한 사고라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자칫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사고였다.

수소차와 수소 충전소가 늘어나면 폭발·화재 사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소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기체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무책임하고 황당한 억지다. 누출된 수소가 공기와 섞이기만 하면 폭발·화재가 쉽게 발생한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다. 수소차가 보급된 지난 6년동안 심각한 폭발·화재 사고가 없었던 것은 행운이었을 뿐이다.

수소에 의한 화재는 독특하다. 수소는 공기 중에서 순간적·폭발적으로 타버린다. 화염이나 연기는 발생하지 않고, 폭발에 의한 2차 화재의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런데 공기보다 더 빨리 퍼지는 수소의 특성 때문에 엄청난 '충격파'(shock wave)가 발생한다. 초음속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충격파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폭발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사람·건물에게도 물리적 피해가 발생한다. 전기차 화재와는 전혀 다른 특성이다.

2019년 5월 강릉에서 발생한 수소탱크 폭발 사고가 증거다. 전기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전기분해 기술을 개발하던 벤처 기업의 철제 탱크에서 누출된 수소가 문제였다. 탱크가 폭발하면서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폭발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건물도 심하게 부서졌다.

수소차나 충전소의 탱크는 탄소 섬유라는 첨단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는 주장은 억지다. 물론 탄소 섬유를 사용하면 탱크 자체의 폭발에 의한 피해는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탱크나 배관 등에서 누출된 수소에서 발생하는 폭발·화재는 어쩔 수가 없다. 충주와 부산의 폭발·화재 사고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렇다고 수소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100% 안전한 연료는 없다. 불을 피울 수 있는 연료는 모두 위험하다. 수소도 예외가 아닐 뿐이다. 그래서 수소를 생산·운반·저장·활용하는 전 과정에서 누출에 의한 폭발·화재의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안전 관리를 위한 '제도'도 강화해야 한다. 인천 청라 지구의 전기차 화재는 안전 관리 제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수소 누출에 의한 폭발·화재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시설과 안전 수칙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인구 밀집 지역에는 충전소를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 수소 폭발에 의한 충격파를 흡수해주는 시설도 필요하다. 국민 안전을 무시하고 설치한 국회의사당 정문 옆의 충전소는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

소비자의 관심과 노력도 중요하다. 수소차의 점검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가스 연료의 누출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누출된 수소는 냄새도 나지 않는다.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실내 주차장에서 누출된 수소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의 불씨다. 수소차의 실내 주차장 출입은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소의 친환경성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질'(改質) 수소는 '청정'과는 거리가 먼 '잿빛'(gray) 수소다. 천연가스의 개질에 필요한 뜨거운 물을 끓이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쏟아져 나온다. 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전기분해도 말처럼 깨끗한 기술은 아니다. 원자로의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진정한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은 여전히 먼 미래의 꿈이다.

수소차 보급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전 세계가 수소차에 열광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올해 9월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된 수소차는 9946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전년 동기보다 17.4% 줄어든 것이다. 그중 3095대는 '수소강국'에 집착하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미국 저술가의 허무맹랑한 '수소경제'에 대한 냉정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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