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찾은 한 지방 소도시. 나이 지긋한 버스 운전기사는 타고 내리는 모든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높아진 버스 안 '공감 온도' 덕분일까. 승객들도 저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보냈다.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한 소도시의 시장과 음식점도 인사와 안부를 나누는 이들이 전하는 온기가 겨울 날씨를 잊게 했다.
비상계엄, 탄핵, 수괴 등 연일 넘치게 들은 '날선 단어' 대신 들려오는 말들에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를 들여다보며 건네는 말에는 낯선 이의 가슴 속 찬 기운까지 훑어내리는 힘이 있었다.
최근 열린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소설가 한강은 수상소감을 얘기하며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에 대해 말했다. 여덟살의 어느 날, 처마 밑에서 폭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함께 서 있던 또래아이들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 그 순간이 그를 문학의 길로 안내했다. 한강은 이후 문학을 읽고 쓴 모든 시간 동안 그 경이의 순간을 되풀이해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강에게 문학은 서로 다른 일인칭들이 연결되는 경험이었다. 그는 문학을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 들어가 내면을 만나는 경험"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다"고 밝혔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결의 경험은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이어진다. 노벨상 수상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한강은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지 나의 '좌표'를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호소한 담화는 격렬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광란의 칼춤을 추는 괴물'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30분 가까이 이어진 담화는 상대에 대한 분노로 채워져 있었다. 상대의 문제가 쌓이고 쌓여 자신의 행동을 불러일으켰다고 항변했다.
한강의 일인칭과 윤석열 대통령의 일인칭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인칭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나 영화는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경험한 것들을 다룬다. 이때 주인공은 사건의 관찰자일 수도 있고 중심인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강의 일인칭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연결에 바탕을 둔다면, 윤 대통령은 철저히 자신을 중심인물로 두고 상대방을 판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좌표를 스스로 놓쳐 버렸다.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화하지 못하는 일인칭은 독단으로 흐른다. 타인을 배제한 '일인칭'은 온도와 방향을 잃는다.
세상은 더 이상 '만인지상'의 권력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보가 평등하게 열려있는 시대에 닫힌 권력은 힘을 갖지 못한다. 연결되고 이해돼야 비로소 파워가 생긴다.
우리 국민들은 '연결된 일인칭들의 힘'을 보여줬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해 그들은 폭력이나 비판 대신 조용한 행동과 유머스러운 깃발, 선결제·응원봉 나눔 같은 행동을 들고 나왔다. 친구들, 아버지와 딸,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함께했다.
특히 우리가 평소에 걱정하고 나무랐던 MZ들은 우리에게 한수 가르침을 줬다. 기성세대들은 MZ에게 뭔가를 배우는 어색한 경험을 즐겁게 했다. 이번을 계기로 깨어나고 연결된 MZ들은 더 큰 숙제들을 깔끔히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다른 세대에 더 많은 가르침을 주고 손을 잡아 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법륜스님은 이번 계엄사태에 '역행보살'이란 얘기를 꺼냈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행동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남을 돕고 세상을 바로 세우도록 기여한 이를 말하는 불교 용어다.
역사는 아이러니 속에 전진하기도 한다. '비상계엄'이란 역행을 가볍게 뒤집은 한국인들은 더 큰 반전을 이룰 힘을 비축했다. 앞에 놓인 울퉁불퉁한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뛰어넘고, 저출생·저성장·기후변화의 복합 위기를 돌파하는 데도 연결된 일인칭 파워가 발휘되길 희망한다. ICT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