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기능원으로 시작해 기술직·연구직 거쳐 기관경영 맡아
취임 100일… 지속가능 발전 발판·예산 1000억 시대 포부 제시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9년 그는 실험동물을 관리하는 일로 연구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연구에 사용할 실험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새끼를 돌보는 단순 업무였다. 몇 년이 안 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언제까지 실험쥐만 관리해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마침 독성실험에 인원이 필요하다고 해 무작정 자원했고, 그것이 인연이 돼 동물실험 전문가이자 독성평가 분야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 3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는 계약직 기능원에서 기술직과 연구직 신분으로 한 단계씩 발전했고, 업무도 연구와 행정분야 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지난 9월에는 연구소 경영을 책임지는 기관장이 됐다. 가장 낮은 직위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직위까지 그가 걸어온 굴곡지고 험난했던 길은 마치 드라마속 주인공과 같았다. 소위 '흙수저'로 시작한 그의 연구 인생이 35년이 흐른 지금 '금수저'로 변해 있었다.

허정두(사진) 안전성평가연구소(KIT) 소장은 박사가 즐비한 연구소에서 전례가 없었던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연구소에 들어와 주경야독으로 대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석·박사를 받은 남다른 이력을 가졌다.

그가 지난 9월 공모를 거쳐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최고 자리인 소장에 최종 선임되자 다들 깜짝 놀랐다. 기능원에서 기술직으로, 다시 연구직으로 연구자 길을 걷다가 소장에 오른 매우 이례적인 경력을 밟았기 때문이다.

연구소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직원들로부터 형님 리더십으로 신망을 얻고 있었던 그는 지체 없이 취임 2주 만에 조직개편과 4대 핵심기술을 선정하고, 세계적인 독성평가연구기관을 향해 뛰었다.

취임 100일을 맞아 만난 허 소장은 "지난 100일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력으로 질주한 날들이었다"며 "앞으로는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호흡을 조절하며 젊은 직원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연구소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2002년 설립 이후 국내외 독성평가와 안전성 연구 전문 기관으로 성장해 왔다. 가습기 살균제의 폐 손상 원인 규명과 미세플라스틱·나노물질의 독성 평가 및 생물학적 영향 연구 등 국가·사회적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해 왔다.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안전성평가연 제공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안전성평가연 제공


그는 "첨단 기술 기반의 독성평가 기술을 확보해 국가전략기술이자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인 첨단바이오 분야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관 역량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성평가연은 그동안 축적한 독성평가 데이터를 플랫폼화해 신약개발 초기부터 안전성을 예측하고, 독성물질의 패턴 학습으로 신약후보물질을 AI로 예측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또한 오가노이드 칩을 이용해 약물 반응과 독성을 정밀 평가하는 기술과 독성 메커니즘을 심층 분석할 수 있는 다중 오믹스 기반 평가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동물실험 축소에 따른 동물실험 대체시험법 연구와 표준화에도 힘을 실고 있다. 그는 "유럽은 화학물질과 화장품 등에 동물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흐름에 맞춰 우리도 동물실험 대체 시험법 확보에 적극 선제적으로 나서고, 글로벌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 소장은 취임식에서 연간 1000억원 예산 시대를 열겠다는 화두를 직원들에게 던졌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자 예산 1000억원 시대를 제시했다"며 "안정적인 재정지원과 연구자원 확보를 통해 혁신적 연구문화를 만들고, 연구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연구도 확대할 방침이다. 허 소장은 "우리 기관은 해외 수탁 연구 규모가 100억원이 넘을 정도로 활발한 글로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 거대 제약사와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유럽의 프라운호퍼연구소 등과 같은 연구기관과 글로벌 협력 연구도 강화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임경영 정착과 소통·협력의 조직문화 조성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허 소장은 "본부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한 만큼 본부장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 본부 중심의 책임경영을 실현할 것"이라며 "시니어, 주니어 연구자 및 MZ세대 간 협력과 소통을 촉진하는 조직문화 형성을 위해 직군, 직종 등 소규모 단위로 연구소 전반에 대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허심담회' 간담회를 임기까지 계속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제기된 직원들의 의견은 정책과 제도 개선에 반영하고, 승진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허정두 안전성평가연구소장.


그는 "내년에는 창의성에 기반한 첨단연구 수행, 출연연구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 실현, 지속적 성장을 위한 연구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기관을 운영할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소의 비전을 실현하는 한 해가 되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허 소장은 마지막으로 "기관장이 되기 전까지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배움과 도전, 사회·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책임감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며 "과학기술은 개인의 호기심 충족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 해결과 인류의 삶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과 환경 안전, 첨단기술 지원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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