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계엄의 요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상황'은 사실상 그날 이후 전개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외환과 주식시장은 요동쳤고, 국가신뢰도는 타격을 입었으며, 송년모임은 취소됐다. 함께 경쟁하는 선진국들도 우려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계엄에 참여한 군인들이 체포됐고, 국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으로 3번째 탄핵소추 의결이 이루어지게 됐다. 법학자로서 개인적인 견해는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상 국가긴급권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오상계엄행위라 생각하지만 그 판단의 몫은 이제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진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탄핵소추의결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국민은 직접선거로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중단시키고 평온한 일상을 훼손당하는 동시에 혼란과 불확실성은 사회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다. 또한 예상치 못한 안전망의 흠결이 발생하면서 사회 소수자인 장애인 계층은 더욱 불안정한 지위에 놓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른바 탄핵 정국에서 시각 장애인 국회의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 제 21대·제 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예지다. 장애인인 김 의원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의 담장을 넘으려 했으나 좌절됐고 장애인 당사자로서 '계엄령' 의 절박함을 경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소속 집권당의 당론에 반해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며(헌법 제46조 제2항),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국회법 제114조의2)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당기속성이 강할 수 밖에 없는 비례대표의원은 당론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하기 어려운 처지다. 상상하건대 제일 먼저 다시 본회의장에 들어와 표결에 참여한 그의 마음 속에는 겉으로 미처 내보일 수 없었던 여러 복합적인 상념으로 짓눌렸을 것 같다.
김 의원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장애인 문제가 충돌하는 그 어디라도 달려가 장애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입법가로서 누구보다도 많은 200여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항상 정제된 언어와 차분하고 논리적 언변으로 정부를 설득하고 장애인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면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우리나라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장애인의 존엄과 장애인 의원의 가치를 직접 증명해 보였다.
국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한 선거권을 각각 보장받고 있는 우리 선거제도 아래서 비례대표제는 소선구제에서 발생하는 사표로 인한 대표성의 불균형성을 보정하는 역할을 하며, 국민 대표성의 측면에서도 지역구 국회의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참여했다고 당내에서 탈당을 요구받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힘 충북도당의 한 간부는 그에게 '배려했더니, 배신으로. 인간성 장애는 답이없다'는 등의 비인격적 표현으로 공격했다. 그런데 해당 도당위원장은 "수많은 공직자 중 한 명이 개인적으로 SNS에 올린 내용을 도당차원에서 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고 하니,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 오래된 영화 제목을 빌어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 공동체의 기본적 신뢰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헌법적 원리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러한 모습은 법치가 정한 '자유위임 우선의 원칙'에 반하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고 '평등권'을 부정하는 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적 처우이며 반이성적 일상화의 전조로 해석된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야만과 차별이 언제 가장 흉포하게 발현되는가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인간의 존엄의 가치의 의미를 잊고 그릇된 야만의 무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심하고 견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박진용 장애인법연구소 소장/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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