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톰슨 미국 유나이티드헬스 최고경영자(CEO)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루이지 맨지오니(26)가 이달 1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블레어카운티 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브라이언 톰슨 미국 유나이티드헬스 최고경영자(CEO)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루이지 맨지오니(26)가 이달 1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블레어카운티 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오늘은 나라 안팎이 이래저래 시끄러운 만큼 거시경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 하나를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 경찰 조사에서 롯데리아에서 전현직 정보사령관들이 모여 12·3 불법 계엄을 사전 모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는데요. 미국에서는 최근 보험사 대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맥도날드 매장에서 붙잡힌 일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맥도날드 직원의 신고로 붙잡힌 범죄 용의자는 26세의 청년 루이지 맨지오네였습니다. 그는 뉴욕 맨해튼 길거리에서 미국 최대 민간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의 브라이언 톰슨 최고경영자(CEO)를 총격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톰슨은 이달 초 행사를 위해 맨해튼을 찾았다가 호텔 부근에서 마스크와 후드점퍼로 얼굴을 가린 의문의 남성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경찰은 용의자가 톰슨의 동선을 미리 알고 있었고 피격 후 쓰러진 피해자에게 다가가 확인사실을 하는 등의 모습을 미루어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붙잡힌 용의자를 보니 의문이 커집니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맨지오니는 메릴랜드의 고급 골프장과 요양원을 소유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볼티모어 명문 사립학교인 길먼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의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그의 친척 중에는 메릴랜드 주의 공화당 하원의원 니노 맨지오니도 있습니다. 당연히 톰슨 대표와의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습니다.

유복하게 자라난 전도유망한 청년이 왜 일면식도 없는 보험사 사장을 그렇게 끔찍하게 죽였을까요. 경찰 체포 당시 그가 소지한 선언문에 단서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는 선언문에서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다. 기생충들이 자초했다. 갈등과 트라우마를 일으킨 것을 사과하지만, 해야만 할 일이었다"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살인 현장에 떨어진 탄피에는 'delay(지연)', 'deny(거부)', 'depose(축출)'이라는 보험사와 관련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실 유나이티드 헬스 그룹 산하 보험사인 유나이티드 헬스케어는 보험금 미지급으로 악명 높은 보험사였습니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는 지난해에만 3100만건의 보험 청구 요청을 거절해 2200만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수천명의 미국인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죽었다고 합니다. 맨지오니도 보험사의 승인 거절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가족과 친척들로 인해 앙심을 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수성가한 톰슨 대표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과거 보험금 지급 기준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아주 유능한 임원이었을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톰슨은 아이오와 시골에서 태어나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한 뒤 PwC에서 회계사로 경력을 시작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2021년 해당 보험회사 CEO 자리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은 미국인의 묵은 분노에 불을 당겼습니다. 보험사의 횡포에 불만을 가졌던 대중이 "의인", "자경단"이라며 살인범 맨지오니를 지지하기 시작한 겁니다. 범인을 응원하는 이들이 SNS에 나타났고, 체포 전에는 경찰의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똑같은 인상착의를 하자는 캠페인까지 벌어졌습니다. 에머슨대가 지난 17일(현지시각)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18~29세 유권자 41%가 맨지오니의 행동을 "포용할 수 있다(acceptable)"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지에서는 악명 높은 보험사들과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라덴을 비교하는 사설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미국 보험사들에서도 뒤늦은 자성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앤드루 위티 유나이티드 헬스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NYT 기고문에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는 분명 결함이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제도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의료 개혁을 위해 병원과 의료인, 환자, 제약사, 정부 등과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흙수저 가정애서 자라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게 된 남자와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자본주의를 혐오하게 된 남자가 만나서는 안될 모습으로 만났습니다.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우리 나라에도 자칫 크나큰 비극으로 비화할 뻔한 불법 계엄 사태가 있었죠. 세계 곳곳에서 돈 때문에 권력 때문에 서로를 해치려는 자들과 그로 인한 상처와 슬픔들이 넘쳐난다 할지라도, 세상의 진보와 민주적 연대의 힘, 그 믿음을 영영 잃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햄버거와 감자튀김만 먹는 걸로 하지요.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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