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영 K정책플랫폼 기후환경연구위원 · 경희대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
올해 76년 만의 9월 폭염을 거쳐 117년 만의 11월 폭설을 겪었다. 혼란스러운 시국에도 기후변화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과학자만의 연구 주제가 아니라, 시민의 문제이다.

이렇게 일상으로 다가온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는 파리협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9년 동안 끌어온 국제 탄소시장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하였다. 하지만, 인구의 92%가 도시에 거주하는 우리는 이제 시민 삶의 일부가 된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대응을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신의 태생을 수저의 색깔로 표현한다. '동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를 최하위로 놓은 것은 흙을 그저 먼지처럼 흩날리고 부서져 없어지는 존재로 보기 때문일까?

흙은 과거 농경시대에 사회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흙을 갈고 퇴비를 주고 토질, 즉 흙심을 길러야 작물이 잘 자라고 찰진 밥과 싱싱한 푸성귀가 우리의 밥상에 올라온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도시민들은 하루 중 10분이라도 맨땅을 밟을 기회가 없다. 그 많던 흙들은 모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혀 숨을 쉬지 못하고 있고, 오직 작은 면적의 도시숲과 공원이나 정원에서만 겨우 숨 쉴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하지만 숨 쉬며 살아있는 흙은 도시에서도 묵묵히 인간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흙은 한자로 토양(土壤)으로 표현하는데, 양(壤)은 흙의 부드러운 성질을 한층 드러내는 한자이다. 토양은 물의 여과와 지하수 충전에 큰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에 떨어진 빗물은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지만, 토양은 이를 머금고 홍수 발생을 예방한다.

도시의 흙에는 질소, 비소, 염화칼슘, 중금속 등 오염물질이 많이 쌓이기도 한다. 흙에는 자정 능력이 있지만, 한계가 있다. 대기오염 물질이 공중에 떠다니면 사람의 호흡기로 가지만, 비가 오거나 야간에는 도시숲의 지면으로 가라앉는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실험한 결과를 보면 숲의 지면 상태가 미세먼지 저감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콘크리트보다 맨땅과 낙엽이 있는 숲이 더 거칠어서, 떨어진 미세먼지가 다시 흩날릴 확률이 낮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흙은 매우 중요하다. 지구 전체로 볼 때, 흙에는 나무보다 약 3-4배 많은 탄소가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도시개발이나 농경활동으로 흙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너무 많이 대기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탄소는 바로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이다.

흙에서 날아가 버린 탄소를 다시 돌리려면, 나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무가 자라면서 낙엽이나 뿌리를 통해 다시 흙에 탄소를 전달해 주는데, 이때 흙의 미생물 친구들은 뿌리와 협력하여 나무에 양분과 물을 건네주고, 이렇게 잘 자라는 나무는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더 잘 흡수할 수 있다. 흙 속의 미생물들이 겨울을 나고 탄소를 더 잘 잡으려면 낙엽과 나뭇가지로 이불처럼 덮인 흙 더께를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도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가로수 아래 흙은 부드러운 흙보다는 모래흙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흙 더께는 깔끔하게 치워진다. 흙이 살아야 미생물이 살고 나무뿌리가 양분과 수분을 가져올 고리가 생긴다. 흙을 잘 가꾸어 살리면 탄소를 저장하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도 건강하다.

이처럼 도시의 흙도 다양하고 중요한 일을 표나지 않게 묵묵히 하고 있다. 표나지 않으니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다. 역할이 사라질 수도 있는 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흙은 '흙수저'처럼 단순히 부서져 없어져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 수저'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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