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일주일간 노벨위크를 맞아 스웨덴을 찾았다. 대학교 동문인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학교는 축제 분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학생들을 인솔해 방문했다. 연세대는 앞으로 노벨위크에 주기적으로 학생을 파견할 계획으로, 교수 2명과 학생 7명으로 이루어진 이번 방문단은 일종의 선발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 방문은 독지가의 기부로 가능했기 때문에 더욱 뜻깊다.
스웨덴 방문은 처음이라 매우 설레이는 마음으로 왔다. 깜짝 놀란 일은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한강 작가를 눈앞에서 만난 것이다. 알고보니 한국에서부터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여전한 수수한 모습으로 있어 기내에서는 알아보지 못했다.
한강 작가는 모교의 후배 학생들을 만나 매우 편안한 분위기로 약 30분간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노벨위크 일정을 노벨위원회가 매우 엄격하게 주관하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어 후배들을 별도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런 아쉬움을 오랜 여행으로 피곤해진 얼굴 대신 함께 손을 모은 사진과 모두들 가방 속에 갖고 있던 한강 작가의 책에 각각 이름과 서명을 받은 것으로 달랬다. 노벨위크 시작 전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스톡홀름에 도착하니 온 시내가 노벨상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톡홀름 시청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삼고, 역대 노벨상 작가들의 모습과 연구내용을 담아 밤마다 미디어 파사드를 펼친 것이 전체 시내 분위기의 중심을 잡아줬다. 스톡홀름 시청은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고 도심 한 가운데 있는데 겨울이라 오후 3시부터 껌껌해진 스톡홀름 하늘에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미지를 아주 큰 음향과 함께 화려하게 뿌려줬다. 스톡홀름 시청, 미디어 파사드, 겨울의 짧은 낮, 노벨상 등이 아주 잘 어울린 걸작이었다.
또한 멋진 인상을 받은 곳은 노벨박물관이다. 그동안 수여된 노벨상과 수상자의 업적 등을 잘 전시해서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각 수상자들을 활용한 기념품들도 판매되고 있었다. 한강 작가의 책도 진열돼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 수가 늘어나면서 다소 비좁은 느낌도 들었지만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물이어서 확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대표적인 건물이고, 스웨덴 의회, 왕궁, 수상 관저 등과 밀접히 붙어있어 독특한 상징성을 가졌다.
방문 기간 동안 만난 스웨덴 사람들은 한강 작가의 수상을 축하해줬다. 모두들 노벨문학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다. 특히 1477년에 설립된 웁살라대학교를 방문해 한강 작가의 스웨덴어 번역본이 전시된 도서관에 한강 작가의 원어 소설 3권을 기증하니 기뻐하는 사서분들의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다. 문화를 사랑하는 멋진 사람들의 미소!
노벨위크의 하이라이트는 시상식이겠지만 시상식이 형식적인 것이라면 교수와 학생의 입장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기념강의였다. 스톡홀름대학에서 열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기념 강의에 참석했는데 3명의 수상자가 자신의 평생 연구를 각각 30분 남짓한 시간에 전달하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나라간 소득격차의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진심어린 눈빛과 목소리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10일에는 노벨위크를 마무리짓는 노벨상 시상식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시상식은 매우 차분하면도 잘 정리된 방식으로 진행돼 스웨덴만의 방식을 잘 보여줬다. 과도한 경호도 없었고 열광하는 관중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노벨위크 동안 스웨덴에 머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노벨이 기부한 자산을 바탕으로 '노벨상'이라는 세계적인 문화를 키워낸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힘이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일부였던 시절 평화상은 오슬로에서 시상식이 열렸지만 노르웨이 독립 후 이를 인정하고 함께 각기 시상식을 여는 것도 인상깊었다.
스톡홀름 중앙역을 거쳐가는 시민들은 매우 바쁜 걸음으로 종종 거리지만 스톡홀름 시내는 노벨상으로 인해 흘러들어 온 지혜가 켜켜히 쌓여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 사회의 문화도 이러한 수준으로 커가고 있다는 증거다. 정치로 인해 온 나라가 혼란에 쌓여 있지만 잠시라도 짬을 내어 한강 작가의 노벨상 기념 강의와 수감 소감을 꼼꼼히 읽어 보기 바란다. 언어의 위로와 힘이 머리 속의 혼란을 가라앉히며 더불어 사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