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에
5대 시중은행·생명보험사
지난달 12일부터 판매개시
생전 사망보험금 관리 가능해
자녀 자립지원·유족분쟁 방지
'양육·교육비 분할 지급' 54%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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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판정을 받은 40대 여성 A씨는 초등학생 자녀를 위해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관리할 수 있는 신탁 상품에 가입했다. 6억원의 사망보험금에서 향후 9년간 매월 300만원씩을 교육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자녀가 대학 입학할 때는 1억원, 대학 졸업 시에는 남은 2억원을 받도록 했다.

40대 남성 최고경영자(CEO) B씨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를 위해 본인의 사망보험금 10억원에 대해 원하는 시점에 쓸 수 있도록 했다. 필요시 보험금의 50%를 먼저 지급받고, 2년에 걸쳐 매년 25%씩을 받도록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사망을 담보로 한 보험금도 청구할 수 있는 신탁 시장이 열렸다. 880조원이 넘는 시장으로 은행권뿐 아니라 관련 라이선스를 지닌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들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보험금청구권신탁은 보험사가 지급하는 보험금을 신탁회사가 운용한 이후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상품을 말한다. 주로 퇴직연금이나 주식 및 채권과 같은 금전 재산을 중심으로 취급한 신탁 제도였지만,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망 담보의 보험금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금청구권신탁이 가능한 조건은 우선 보험 계약자와 피보험자, 신탁계약 상 위탁자가 동일인이어야 한다. 보험 수익자는 보험 계약자 본인이나 보험 계약자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 직계존속 중에서 지정해야 한다. 신탁계약 상 수익자는 배우자와 직계비속, 직계존속으로 정해야 한다.

신탁계약 체결 당시 보험계약대출이 없어야 하며, 가입 이후에도 해당 대출을 이용할 수 없다. 또 사망보험금 신탁은 3000만원 이상 일반 사망 보장에 대해서만 보장한다.

재해·질병 사망 등 특약사항으로 획득한 보험금청구권은 신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손해보험사 상품의 이용은 어려운 셈이다.

금융권에선 신탁 서비스를 고액 자산가 대상의 전유물로 여겼지만, 이번 보장 확대로 대중화될 것으로 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생보사의 사망 담보 보유 누적 계약금액(일반계정)은 883조원에 달한다.

은행, 보험사 등 신탁회사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난달 12일부터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 중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에서 취급하고 있다. 보험업권에서는 종합재산신탁업 자격이 있는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 외에도 미래에셋생명, 흥국생명 등이 판매에 나섰다. 보험사들은 신탁 투자권유 대행인의 자격을 갖춘 설계사가 판매할 수 있다.

금융지주 계열 생보사들은 신탁업 라이선스가 없는 경우, 신탁 특화 상품 개발로 '자산관리(WM) 협력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이번달 후발주자로 등장한 KB금융그룹의 국민은행과 KB라이프생명은 각각 신탁 상품과 맞춤 종신보험 상품을 내놨다.

국민은행이 신탁 상품으로 안전하고 체계적인 보험금 관리를 돕고, KB라이프는 고액 가입자인 VIP 고객을 대상으로 보험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40세 남자·20년납 5000만원 가입금액 기준 17% 인하 효과가 있다. 고액 계약자 대상으로 보험료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신탁 제도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상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관리할 수 있어, 수익자의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피보험자는 사망 전 신탁 계약을 맺으며 수익자가 받게 될 사망보험금의 지급 방식과 금액, 시기 등을 수익자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다. 고액의 사망보험금을 일시에 지급하지 않고,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자녀에게 생애 주기에 맞춰 분할 지급하거나 매월 생활비로 나눠 받도록 할 수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돕거나, 수익자를 미리 지정해 유가족 간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100호 계약을 돌파한 교보생명의 신탁 계약 현황을 보면 고액 사망보험금이 아닌 3억원 미만의 가입자도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생명에 따르면 보험금청구권신탁 가입자 중 사망보험금은 3000만~1억원 미만이 52%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1억~5억원 미만(41%), 5억~10억원 미만(5%), 10억원 이상(2%) 순으로 나타났다.

계약자가 요청한 신탁 계약 상의 보험금 지급 방식은 (미성년)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월 분할지급이 5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배우자 생활비, 의료비 등 월 분할지급(22%), 부양가족 생활비 분할지급(21%), 미성년 자녀 성인 이후 일시지급(3%) 순으로 나타났다.

교보생명 계약자 기준 가장인 남성(43%)보다 여성이 57%로 가입 비율이 더 높았다. 연령별로는 10명 중 6명이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인 40·50대 고객이었다. 그 다음으로 50대(34%), 40대(32%), 60·70대(26%), 30대(8%) 순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보험사 등이 보험금청구권신탁의 대중화에 맞춰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맞춤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며 "종합재산신탁을 활용한 고객 자산 맞춤형 서비스를 내세우는 생명보험사에 맞서 은행권도 연계 신탁 상품 등으로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성원기자 son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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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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