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빌리티·로보틱스 주가 급락 "주식매수청구 감당 못 할 상황" 불확실성 확대되며 '사업 원점'
두산에너빌리티 홈페이지에 게시된 분할합병 철회 4차주주서한. 두산에너빌리티 홈페이지 갈무리
두산그룹이 논란 속에 추진해 온 계열사 사업 재편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정부가 추진 중인 원자력발전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에 원전 테마주로 꼽히는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20%나 급락한 영향이다.
이번 사태로 두산그룹은 그동안 준비해온 사업 재편 계획에 중대 고비를 맞이하게 됐다. 그룹의 중장기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으며, 금융·전략·신뢰적 측면에서 복합적인 과제를 떠안게 됐다.
10일 두산에너빌리티에 따르면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로 이관하는 분할 합병안을 의결할 임시 주주총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임시 주총은 오는 12일 열릴 예정이었다. 앞서 두산그룹은 사업 시너지 극대화와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소재를 3대축으로 하는 사업 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개편의 일환으로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간 분할 합병을 추진했다.
그런데 뜻밖의 '계엄 사태'가 신사업 전략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발동 이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급락했고, 이에 따라 이번 합병을 위해 주식 매수 한도로 설정한 6000억원을 초과하는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만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도 한도를 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해 분할·합병 당사 회사들의 주가가 단기간 내에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의 괴리가 크게 확대됐다"고 철회 사유를 밝혔다.
이어 "찬성 입장이던 많은 주주들이 주가 하락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반대 또는 불참으로 선회함에 따라 본 분할·합병 안건의 임시주주총회 특별결의의 가결 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지고 당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상현 대표도 이날 홈페이지에 4차 주주서한을 게재하고 "갑작스러운 외부환경 변화로 촉발된 시장 혼란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회사는 오는 12일로 예정된 임시 주총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를 포함한 두산그룹은 사업 개편 재추진 여부에 대해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날 "회사 분할합병 계획에 대한 철회는 갑작스러운 대외 여건에 따른 결정으로 향후 일정에 대해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며 "향후 다양한 대내외 여건을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므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는 상당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은 지난 7월 발표 당시만 해도 취지 면에서는 큰 호응을 받았다. 그룹은 클린에너지(두산에너빌리티·두산퓨얼셀), 스마트머신(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반도체·첨단소재(두산테스나)로 그룹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위험 분산과 성장 가능성 확대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계획의 핵심이었던 두산밥캣의 분할합병이 반대에 직면하면서 차질을 빚었다.
일각에선 최근 발생한 계엄령 사태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간의 합병 무산에 직접적인 유탄이 됐다고 보고 있다. 계엄령 사태가 국내 정치와 정책 환경 전반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야기했고, 이에 따라 원전 정책 등 주요 산업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번 분할합병 무산으로 중장기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며 그룹 내 사업 재편 전략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특히 두산로보틱스는 올해 IPO를 통해 투자 자금을 확보하며 신사업 확장에 대한 기대를 높였었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과 통합 시너지를 상실하게 되면서 단기적인 성장 전략이 흔들릴 가능성이 대두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논란과 시장의 불확실성이 맞물린 상황에서 두산의 핵심 사업인 원전 사업과 관련된 정책 의존도가 높은 구조가 투자자들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며 "두산그룹은 합병 무산 여파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사업 재편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고 말했다.
양호연기자 hyy@dt.co.kr
(왼쪽부터)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이사 부사장,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사장, 스캇박 두산밥캣 대표이사 부회장 등 두산 3사 최고경영진이 10월 21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질의응답하고 있다. 양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