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 국회 통과 난항 우려
정부가 10일 국무회의를 열어 R&D 분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급변하는 기술환경 속에서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분야 예타 폐지 방안을 발표한 지 7개월 만이다. R&D 예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한 정책이다. 하지만, 시행을 위해선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탄핵정국과 맞물려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R&D 분야 예타 폐지 이행을 위한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R&D 분야 예타 폐지는 지난 5월 17일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사업의 신속성과 적시성 제고를 통한 선도형 R&D 전환 및 대형 R&D 사업 투자 시스템 개편의 일환으로 발표됐다. 이어 지난 6월 경제장관회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사업 유형별 맞춤형 검증 제도 등 예타 폐지에 따른 후속방안이 마련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예타 제도는 총 사업비 규모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인 사업 진행 시 경제성, 정책성 등을 고려해 사업 시행 전에 타당성을 검증받도록 1999년에 도입됐다. R&D 분야는 2008년부터 예타 대상에 포함됐는데, 2018년부터 기술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R&D 특수성을 반영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예타 제도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평균 2년 이상 기간이 걸리고, 불확실성이 큰 R&D 분야는 예타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예타에서 탈락하면 다시 예타 심사 트랙을 받아야 해 R&D 적시성이 떨어지고, 예타를 피하기 위해 사업 예산을 500억원 이하로 낮추는 꼼수 논란도 불거졌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가R&D 사업과 R&D 수행에 필수적인 건설공사를 예타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학기술법 개정안은 R&D 예타 폐지 이후 보완 방안으로 '맞춤형 심사제도'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한다. 과기정통부와 기재부는 이달 중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초·원천연구 등 대규모 '연구형 R&D 사업'의 경우 기획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기획점검제'를 거쳐 예타 없이 차년도 예산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기존에 2년 이상 걸리던 일정을 크게 단축시켜 신속한 R&D 수행이 가능해진다.

대형가속기 구축, 우주발사체 등 '구축형 R&D 사업'은 실패 시 매몰 비용이 크고, 구축 이후 운영비가 지속 투입됨에 따라 보다 면밀한 점검을 위해 '맞춤형 심사제도'가 도입된다. 단순한 장비도입은 신속심사 적용으로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사업관리가 복잡한 대형연구시설 구축, 체계개발 등은 단계적으로 심사해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환경변화 등에 따라 사업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획변경심사를 통해 유연한 사업 추진도 가능하다.

문제는 국회 통과 여부다. 탄핵정국에 여야 간 정상적인 논의가 이뤄질 지 장담할 수 없다. 비상계엄을 심의한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안건이라는 점에서 절차적 타당성 문제 소지도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주도했다는 점에서 야당이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국회 통과와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는 R&D 예타 폐지가 국가 혁신을 견인한 3대 게임체인저 기술 개발과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 등을 위한 골든타임을 확보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한 관계자는 "여야 이견이 없는 AI기본법과 단통법 폐지안 등도 탄핵정국에 언제 국회를 통과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R&D 예타 폐지도 기약없이 계류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지난해 5월 17일 세종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 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5월 17일 세종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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