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출산율이 왜 이렇게 낮나요? 원인이 무엇인지요?"라는 질문을 들었던 게 10여 년 전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중심으로 범정부 종합정책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였다. 예산도 많이 투입되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하여 15년간 280조라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오히려 출산율은 10년 전보다 더욱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낮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높은 양육비, 주거비, 교육비, 그리고 일과 가정의 양립의 어려움, 경력단절 우려 등을 꼽는다.
지난달 유엔인구기금과 통계청이 공동주관한 '제8회 저출산 고령화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한 토마스 소보트카 박사는 동아시아의 매우 낮은 출산율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중 한국은 제도적 불일치가 특히 강하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시간, 한국 청년층의 낮은 삶의 만족도와 불안감 그리고 늦어지는 결혼과 출산 시기 등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수립한다고 해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제도들이 현장에서 잘 사용되어야 한다. 유연근무제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15.6%가 유연근무제를 이용했다고 한다. 필자가 처음 경험한 유연 근무는 2010년도 미국에서 대학원생 연구 인턴을 할 때였다. 8일간 1시간 더 일하면 하루는 출근하지 않아도 됐었다. 포스코 그룹이 금년 2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때 필자는 상사에게 "내가 인턴인데 사용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오히려 왜 안 되느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정직원이 아닌 인턴도 유연 근로를 자연스럽게 쓰는 직장문화가 놀라웠다. 팀원간 회의시간을 잡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미리 계획하고 서로 조율하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을 변경하고 싶다면 미리 조정하면 되었고 설명을 요구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한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는 국가는 프랑스이다. 2022년 프랑스의 출산율은 1.79로 OECD 평균 출산율 (1.51)보다 높다. 프랑스의 가족지원정책이나 제도에 관한 이야기 역시 자주 언급되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과 제도들을 논하기 전에, 조직문화나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15년부터 3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하며 느낀 것은, 가족 중심의 문화, 정시 퇴근, 유연한 조직문화 등이 뒷받침되었기에 정부 주도의 가족 지원 정책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중요한 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야근한 적이 몇 번 있었다. 6시 반쯤 컴퓨터 앞에 있으니 동료나 상사 모두 왜 아직도 있냐고 얼른 집에 가라고 했다. 오히려 내가 퇴근 시간 후에 일하고 회사에 남아 있는 게,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야근과 회식문화도 우리 부모님 세대의 직장과는 너무 달랐다. 필자는 어렸을 때 엄마의 퇴근이 너무 늦어 먼저 잠든 기억들이 떠올랐다. 저녁 회식은 1년에 한 번 있는 회사 전체의 파티 외에는 거의 없었다. 혹여 저녁에 만난다고 하더라도 본인 집에 팀원들의 가족까지 초대하여 함께 하는 저녁 식사나 파티가 많았다. 물론 올 수 있는 사람만 오면 되는 부담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의 직장문화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직장에 많이 유입되는 것도 변화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일과 가정의 양립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이런 인식 개선과 유연한 근무환경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