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돌아올 때면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나라 과학자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린지 꽤 오래됐다. 하지만 올해 역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려던 찰나, 홀연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벨상 이야기만 나오면 뭔가 늘 국민께 빚을 진 것 같은 심정이 되던 터라 과학상이 아녀도 기쁘기만 했다. 우리와 별 인연이 없는 노벨상 때문인지 늦가을이면 더욱 스산해지곤 하던 마음에 큰 용기를 북돋은 선물이었다고 할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덕분에 잔뜩 위축되었던 서점가와 출판계 역시 모처럼 만에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소식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한국 과학계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까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올해 노벨 과학상의 가장 큰 화제는 물리학상과 화학상 모두 인공지능(AI)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들이 수상한다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은 물리학을 활용해 인공신경망을 훈련한 미국 프린스턴대 존 홉필드 교수와 캐나다 토론토대 컴퓨터학과 제프리 힌턴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AI 계산 능력의 핵심인 인공신경망(ANN)을 개발하고 머신러닝의 기초를 세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벨 화학상은 미국 워싱턴대 생화학과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 수석연구원 존 점퍼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이 개발한 로제타폴드와 알파폴드는 천문학적 연산이 필요했던 단백질 구조 분석과 예측 시간의 획기적인 단축은 물론, 이제 자연에 없는 인공단백질의 설계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수상은 노벨 과학상 선정의 가장 중요한 두 기둥, 즉 '새로운 지적 지평으로 또다른 연구를 촉발하였는가'와 '그 연구가 인류에게 혜택을 주었는가'란 두 가지 질문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었기에 가능했다. 앞서 노벨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마리 퀴리, DNA의 이중 나선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 유전자 편집 기술로 난치질환 정복의 길을 연 제니퍼 다우드나, mRNA 백신으로 팬데믹 극복에 이바지한 카탈린 카리코 역시 마찬가지다.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수상자의 연령이다. 올해 분야별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 직전,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 선정 결과를 분석해 노벨상 수상 확률을 높이는 비법을 공개했다. 네이처에 따르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성과의 발표와 실제 노벨상 수상 시기의 간격은 평균적으로 29년이다. 이는 적어도 40대에는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야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봤을 때 각각 40대와 30대에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존 점퍼 수석연구원과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예외 없이 모두 60~90대의 나이다.
네이처는 지역적으로도 북미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것이 노벨상 수상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전한다. 실제로 국제사회 각계의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노벨위원회는 "수상자의 성별, 국적, 분야별 다양성의 향상을 목표로 선정 과정을 개선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노벨상 수상의 길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파급효과가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해온 대가가 노벨상을 받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래서 20여년 전부터는 석학급이라 평가받는 소수의 연구자에게 대규모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노벨과학상 발표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파급효과가 높은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Novelty'(신규성)다.
처음 혹은 그에 준하는 초기 연구의 독창성, 참신함이 노벨과학상 선정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연구를 빨리 따라잡는 데 익숙했던 우리 과학자들이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의 체질을 계속해 개선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적 한계를 극복할 '과학외교'도 절실하다.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주로 자신이 학위를 받은 출신 대학의 국가를 대상으로 개인, 대학, 연구 관련 기구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 차원의 과학 교류와 협력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혁신과 발견은 단지 과학의 진보를 넘어 전 인류의 내일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소중한 이야기를 세상에 더 널리, 더 깊이 전해야 한다. 그들이 이룬 성과의 가치를 정확히 알리고, 그 안에 담긴 열정과 헌신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며 우리의 과학이 세계 속에서 더욱 큰 울림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오는 10일 한강 작가가 등장할 노벨상 시상식과 작가의 수상소감이 기다려진다. 또 그리 머지않은 미래, 다시 한번 이런 생중계 장면을 온 국민이 함께 지켜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다린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한국의 ○○○ 박사께 올해의 노벨 과학상을 수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수상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