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권 불문 '제 눈의 들보'는 감춰와
특검 거부감에 대통령이 "反헌법적" 주장
8년 공석 특별감찰관, 부실 방치된 공수처
본령 잃은 공직기강비서관…특감반은 해체
초유의 감사원장 탄핵 등 정치권력 보복도

지난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마친 뒤 출입기자단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지난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마친 뒤 출입기자단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무너지는 공직 감시

권력은 감시와 투명화를 꺼리는 속성을 지우지 못한다. 예외인 세력은 없다. 야권이 '살아있는 권력' 수뇌부에 부패 의혹을 제기하면 여권은 전직 대통령 주변과 야당 대표 의혹과 사건을 겨눈다. 상대당 치부를 들춰내자는 특별검사(특검) 도입 여론전은 요란하지만, '속 시원하게' 마무리되는 사건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경찰과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헌법상 감찰기관인 감사원, 대통령 소속 특별감찰관(특감) 등 수사·감사·감찰 명목의 기구는 넘치지만 공직사회 자정(自淨) 효과는 드물다. '제 눈의 들보'를 들추는 권력이 없었고, 정쟁 한복판에 소환되는 탓이다. 운용 예산과 조직을 고사시키거나, 공석인 사례도 있다.

'감탄고토'부터 흔하다. 대표적으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7일 대국민 담화와 병행한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두고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법률로는 뭐든지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일각에서까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공천·당무개입 정황,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무혐의 처분 등 정무·사법적 의혹을 매개로 특검 도입론이 표출됐지만 나온 반응이다. 윤 대통령 자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직결된 국정농단 의혹 특검팀의 수사팀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11월29일 김건희 특검법에 세차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12월7일이 유력한 세번째 국회 재의투표로 국민의힘이 기로에 선 상황이다. 대통령실 등은 특검법 '독소조항'으로 야당 주도 특검후보 추천과 언론 브리핑 조항을 문제삼았지만 국정농단 특검 입법(2016년 11월)땐 모두 관철된 요소였다.

윤 대통령은 제2부속실 부활에 관해선 지난 기자회견 당일 2부속실장을 발령냈다면서도 "직원들도 조만간 다 뽑을 것이고 2부속실 사무실도 공사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올해 4·10 총선을 앞둔 1월 대통령실에서 '2부속실 설치 검토'를 언급한 지 열달, 2부속실장 내정이 알려진 지 석달여 만이었지만 함흥차사였다.

2부속실은 애초 영부인 보좌 전담조직이나, 폐지 후 보좌 기능의 '불투명성'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윤 대통령 집권 후로도 김 여사가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았고, 가방을 준비한 야권 유튜브 '서울의소리'가 이를 '몰카'로 폭로했다. 매체는 대선 땐 김 여사와 7시간 분량 통화 녹취를 폭로했었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특별감찰관'에 관해 "국회에서 추천이 오면 그건 대통령이 임명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라면서도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함께) 임명하느냐를 민주당, 국민의힘 내부에서 일정한 방향을 잡아 (특감)후보 추천을 하면 그(3명)중 한사람을 내가 임명할 것"이란 조건부 입장을 내놔 이목을 끌었다.

20대 대선 약 2달 전(2022년 1월) 김 여사 녹취 폭로로 인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캠프 내에선 '대통령 당선 즉시 특별감찰관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자는 건의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특감은 박근혜 정부 4년차이던 2016년 9월 이석수 전 특감 사퇴 이후 문재인 정부 5년과 현 정부 내내 공석이다.

당선인 시절의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때 '조국 사태'를 반면교사로 청와대(옛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되 대통령 소속인 특감 정상 가동을 예고하기도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북한인권재단 이사 여야추천과 무관하게 '대선 공약'이라며 윤 대통령에게 특감 임명 추진을 촉구한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소속 특별감찰관을 역임하던 중 사퇴한 이석수 전 특감.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 발탁됐다.<연합뉴스 사진>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소속 특별감찰관을 역임하던 중 사퇴한 이석수 전 특감.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 발탁됐다.<연합뉴스 사진>


특감은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던 '대통령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부패방지법'을 2014년 여야 합의 특별감찰관법 제정으로 현실화한 제도다. 법령상 특감은 '대통령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의 비위행위 등을 감찰한다. 대통령 소속이되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며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이 전 특감은 2016년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첫 비위 감찰 대상자로 조사해 수사의뢰하고, 박 대통령의 여동생인 박근령씨를 사기 혐의로 고발,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 관련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내사한 사실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청와대가 '기밀 누설 혐의'로 문제삼자 대치하던 그는 사퇴했다.

청와대와 특감 충돌은 국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2016년 12월)와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인용(2017년 3월)으로 이어진 계기였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비서관·행정관의 2013~2015년 이른바 '정윤회 지라시'(청와대 내부 문건 복사본) 유출과 여권 안팎 정쟁이 이와 맞물려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진 여파가 컸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반사이익으로 집권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20대~21대 국회 범(汎)민주당 진영이 과반 의석을 가졌을 때 특감을 임명하지 않았다. 당시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특감 임명 불이행'을 공세 수단으로 삼았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특감 추천부터 불응한 채 '공수처 설치가 우선'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공약이었던 공수처는 2019년 12월말 설치법 강행통과 후 2021년 1월 출범했지만, 2022년 정권교체 이후 예산난·인력난에 시달려왔다. 접수된 사건 대다수를 매듭짓지 못했고 수사능력 한계로 무용론이 팽배하다. '채 상병 사건' 수사도 여론 환기에 그쳤다. 180~190석의 야권도 관련 법안보단 특검법에 집중해왔다.

'채 상병 사건'은 해병대원 고(故) 채수근 상병이 순직(2023년 7월)한 뒤 1년5개월 만에 여야가 국회 국정조사에 합의한 상황이다. 앞서 경북경찰청이 7월 해병대 박모 여단장 등 6명을 검찰에 넘겼지만, 수중수색 관련 '지시사항'의 출발점이자 'VIP 격노설'에 연루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불송치해 의혹을 남겼다.

12월5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12월5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국조 합의는 얼핏 보면 극적이지만, 야당이 세차례 발의한 특검법이 대통령 거부권 등으로 폐기되고 '야당 단독 국조'가 추진되자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마지못해 응한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이 순직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 '축소 외압'이 가해진 의혹엔 이시원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등 대통령실 인사들이 휩싸였다.

현임 이원모 공직기강비서관과 전임자는 나란히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린다. 초대 인사비서관에, 여당 총선주자로도 발탁됐던 이 비서관은 '휴대전화·근태 감찰 강화' 주도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박근혜 청와대' 시절 조응천 비서관이 정권의 치부를 묵인하지 않은 끝에 '야당 정치인'의 길을 간 것과 대조적이다.

'상설특검법(특별검사법)'도 10년을 잠자다가, 야당의 칼자루 독점 후에야 가동되는 모양새다. 민주당 등은 이달 7일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 혐의로 규정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처리한다. 지난달 28일 대통령 및 가족 수사의 경우 특검후보추천위에서 '여당 배제'하도록 국회 규칙을 단독 개정한 데 이어서다.

감사원도 정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은 5일 국회 본회의에서 헌정사상 초유의 감사원장 탄핵소추안 의결을 강행했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엔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 등, 현 정부에선 '문재인 정부 탈(脫)원전'과 '해수부 공무원 북한군에 피살·월북조작' 등 사건을 집도했다가 '정치 감사' 시비에 휘말려왔다.

한편 김대중(DJ) 정부까지 이어진 '사직동팀'에서 전환된 '특별감찰반'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특감반은 자체적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친인척 관리 및 첩보 수집 기능을 맡았다. '조국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에서 일했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정권 실세 비위 감찰 무마'를 폭로한 뒤 위축됐다.

특감반은 '공직감찰반'으로 이름도 바뀌었는데, '조국 사태'를 반면교사 삼겠다던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민정수석실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대신 국무총리실 산하에서 공직복무관실 공직감찰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올해 5월 민정수석실을 부활시켰는데, 공식적으로 반부패비서관실까지 재설치되진 않았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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