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與 협의로 금주 국회 제출
금융위 "분할·합병시 주주보호"
전문가 "방향 동의, 허점도 있어"

한국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법 개정 방향이 또 한번 엇갈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가 자본시장법 개정을 내놨다.

분할과 합병과 같은 기업의 재무적 구조에 대한 절차적 개선으로 주주보호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기업의 근본적인 재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반박도 나온다.

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기업이 합병 등을 하는 경우 이사회는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주보호원칙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을 이번 주 국회에 제출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내놓은 법안이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의 충실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문제가 된 합병·분할 핀셋규정…대상도 상장법인만"= 자본시장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회 안건 중 합병과 분할과 같은 재무적 결정에 대해서만 주주의 보호의무를 적용하는 것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적용 대상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해 상법 개정으로 모든 기업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적용 범위도 재무적 행위로 한정해 기업의 일상적 경영활동 불확실성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법인 상법이 상장과 비상장 등 국내 모든 기업을 규제하는 것과 달리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에 한정돼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또 기업의 모든 결정을 제약할 경우 경영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상장사 정관을 파악해 보니 이사회 결의 사항이 99개 조문이나 된다"며 "분할과 합병은 그중 하나일 뿐인데, 소액 투자자들의 이익을 지키자고 이들 조문을 모두 포함시키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지금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이 이사의 충실의무에 맞춰져 있고, 그 문제가 불거진 부분은 합병과 상장 때문"이라며 "집중투표제나 감사 선임 등은 논의가 더 숙성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애매한 부분들이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회사와 시장이 모두 납득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조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정당한 이익이나 노력과 같은 표현들은 향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공정가액 산정 부분도 삭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하게 제시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가 들어가는 것이 시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은 '임시방편'… 근본적 개선 방안은 상법 개정"= 반면 여전히 자본시장법이 아닌 상법을 개정해야 근본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의 이상목 대표는 "분할과 합병 절차를 정해놓으면 기업들은 또 그것만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며 "과거 물적분할 규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핀셋 규제를 할 때마다 기업들은 교묘하게 이를 이용해 소액 주주들을 기만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소액주주 보호'를 지키는 척 하면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궤변"이라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분할이나 합병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인 이익이 깨졌을 때,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짓을 했을 때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법의 재무적 구조와 함께 상법상 지배구조 개선을 함께 추진하면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 말하는 합병과 분할 등의 절차 문제와 상법 개정을 주장하는 측에서 말하는 지배구조 개선은 별개 문제"라며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상법 개정안을 대체한다는 것은 법 체계상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분할 합병 문제보다 지배구조에 대한 개념이 더 큰데 지배구조에 들어가야 할 문제를 합병과 분할만 가지고 오면 법 체계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다"며 "시장에서 원하는 것은 그 재무구조를 결정하는 것도 이사회고, 그 이사회에 대한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담긴 주주 보호 원칙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상충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회사에 충실한 결정을 했는데, 이 결정이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어느 쪽이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지금 정부가 말하는 자본시장법이 상법을 대체한다는 것은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모두 공부한 학자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라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답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왼쪽부터)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답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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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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