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 현 프로젝트-솔져 대표·사진작가
2021년 '유퀴즈' 출연해 재능기부 주인공으로 화제
국군·미군 등 6·25 참전용사들 2700명 사진에 담아
2022년 국가보훈처 인가받은 비영리 사단법인 출범
"유퀴즈 효과가 한 1년 갔다… 지속성 없어 안타까워"

지난 2021년도 한국전쟁 참전용사 단체사진 대형달력을 제작했을 당시의 라미 현(본명 현효제) 사진작가.
지난 2021년도 한국전쟁 참전용사 단체사진 대형달력을 제작했을 당시의 라미 현(본명 현효제) 사진작가.
"한국전쟁이 냉전 70년간의 가장 큰 사건 중이고 유일하게 (공산세력을) 막은 의미가 되게 큰 전쟁인데, 그리고 이분들이 '나'가 아니라 '우리 가족 우리나라'를 위해 허리띠 졸라매고 똥지게 짊어지며 열심히 살았는데, 진짜 우리 참전유공자분들에 대한 인식이 뭐예요? '리어카나 끈다'고 하지" "학대받은 아이에게 사탕 줘 봤어요? 안 먹어요. 의심하지. '너 어디, 보훈처에서 왔니?', 제가 '좋아서 왔다'고 하면 약 팔러 온 줄 알아요"

사진작가 라미 현(Rami Hyun, 본명 현효제·45·사진)은 이달 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소외된 '6·25 참전용사' 대다수가 가진 '설움'을 대신 토로했다. 그는 앞서 2021년 1월 tvN '유 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해, 한국전쟁 22개국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남긴 '재능기부' 주인공으로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엔 2022년 국가보훈처의 인가를 받은 비영리 사단법인 '프로젝트-솔져(Project-Soldier)'의 대표이사로서 인터뷰에 응했다.

현효제 대표는 최근까지는 총 2700명 가량 6·25 참전용사들을 만나왔다고 밝혔다. 국군 참전용사 약 1000명, 유엔군 주축이었던 미군 참전용사 1500여명, 나머지 참전국 용사들 100여명의 제복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현재 생존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90세 이상 고령이다. 현 대표는 사진 촬영에 그치지 않고, 손자가 할아버지 옛 이야기를 듣듯 인터뷰한 영상을 공식 SNS에 공유하고도 있다. 극진한 예우와 살가움이 느껴진다.

지정 기부금단체 등록을 위해 비영리법인 준비 중이던 2021년 7월 현 대표는 첫 사진 에세이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를 출간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보낼 때 '얼마를 내야하냐'고 묻는 용사와 가족들에게 "어르신은 이미 69년 전(참전 시기)에 사진 값을 지불하셨다"고 매번 안내한 데서 기인했다. 2013년부터 그는 전액 자비부담으로 현역·예비역 불문 군인과 제복 근무자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참전용사 사진작가를 처음부터 목표하진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좇다보니 현재 위치에 오게 됐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군 참전용사들을 두루 만나며 작업했을 정도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현 대표는 1979년 서울 왕십리 출생이다. "고1 때 반공(反공산주의)교육 받았다. 빨간 물감이 없어 북한을 보라색으로 그리다가 맞은 적 있다"는 일화도 전했다. 2000년 한양대 인문학부로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진로를 틀었다.

2001년 입대한 그는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CBT(Computer Based Training)병으로 선발된 뒤 디자인 재능을 키웠다. "총이 어떻게 나가는지,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게차 리프트 유압 작용 등을 보여주는 (교육용)3D 애니메이션 그래픽 작업을 했고 '이게 재밌구나' 했다"는 것. 전역 후 비주얼 이펙트를 배우려 미 샌프란시스코의 AAU(cademy of Art University)로 진학했는데, 초기 1년 교육과정 중 '사진'에 강하게 이끌렸다.

현 대표는 "미국에선 종군기자가 하고싶었다. 그래서 미군이나 SWAT(특수화기전술조), 트레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회사 일 하면서 제품 찍고, 총을 찍고 쏴보는 것도 하고 싶었는데 신분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고 했다. 2010년 AAU 졸업 후 귀국한 그는 라미(Rami)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서울대병원 측 의뢰에서 큰 성과를 거둔 뒤 2013년 육군 1사단으로부터 홍보영상을 부탁받으면서, 제대 10년 만에 다시 군과 인연을 갖게 됐다.

그로선 자주 받아온 질문을 건넸다. 왜 '라미'인가. 본명 '현효제'를 발음하기 어려워 한 미국 사람이 많았고, 좋아하는 소설 '붉은 10월'의 주인공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의 이름을 땄다고 했다. '밀덕(밀리터리 오타쿠, 군사·무기정보에 열광하는 사람)인지'도 물었다. "밀덕 아닌데 다들 오해한다. 그냥 '익스트림'하고 '나만 (사진)찍을 수 있는' 환경이 좋다. 총은 쏘는 걸 좋아하지 (제원 등)아는 게 없다. 총은 그냥 잘 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

비영리 사단법인 '프로젝트-솔져' 설립에 앞서 라미 현(본명 현효제·45) 사진작가가 개인 자격으로 진행한 네번째 프로젝트 'Searching for KWV(Korean War Veteran)' 활동 당시의 모습.
비영리 사단법인 '프로젝트-솔져' 설립에 앞서 라미 현(본명 현효제·45) 사진작가가 개인 자격으로 진행한 네번째 프로젝트 'Searching for KWV(Korean War Veteran)' 활동 당시의 모습.
현 대표는 방송 출연 이후 보훈처의 협조 연락을 받았고, 비영리 법인을 세웠다. 현재 4명의 직원을 두고 활동범위도 넓혔다. 국방부의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동행해 기록사진을 남기고, 안보강연에도 나서고 있다. 누구보다 뜨겁게 일해온 그이지만 '벽'에 부딪힌 듯한 냉소가 묻어나왔다.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도와주시기도 하는데, 안타까운 게 이벤트성이고 지속성이 없다"며 "'유 퀴즈 효과'가 한 1년 갔다"고 했다.

2021년 6월 서울시가 호국보훈의달 기념으로 '꿈새김판'에 현 대표의 국군참전용사 사진을 담고, 경기 오산시가 스미스 평화관에 유엔군에 감사를 전하는 작품전을 연 바 있다. 5년간 총 1억원 후원을 약속한 반도체 기업, 오너가 3000만원을 쾌척한 H모 기업 기부 사례도 있다. 당사자들이 '유 퀴즈' 출연분을 접한 덕분이었다고 한다. 개인 정기후원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프로젝트-솔져 재정은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라고 했다.

현 대표가 아쉬운 부분은 '지속성'이다. 또 참전유공자에 대해 '노년층 정치집회'와만 연결 짓는 인식과 홀대, 귀빈이 늘 앞줄이고 유공자는 호출로 끝인 '주객 전도'된 행사 문화에서 미국과 현저한 격차를 느낀다고 했다. 새 제복 디자인도 미국은 참전유공자에게 물어 물어 결정하지만 한국은 사실상 '통보'다. '내 사업' 안 될 것 같으면 손을 떼는 공공기관, '우리 당 간판을 걸어달라'는 생색내기가 앞선 정치인 등과 협업도 어렵다고 했다.

현 대표는 제도와 사회인식 개선을 역설했다. 6·25 참전명예수당이 월 45만원으로 인상을 앞두고 있지만 예우로서 턱없이 모자라다고 했다. 6·25 참전유공자회의 '유족회를 만들어달라'는 바람조차 묵살돼 "형평성" 문제 의식이 들었다고 했다. 유공자회 서울지부를 서울시청사에 만들어달란 요청도 불발되고, 지하철 공덕역으로부터 '도보로 22분 경사로'를 올라야 하는 건물 '7층'에 조성돼 수요자를 위한 "디테일"이 결여됐다고도 했다.

그는 "교육부가 국가유공자단체와 협업해 연 1회 6·25 교육을 시키게 돼 있었는데, 지난 정부 때 '의무'에서 '학교장 자율 권한'으로 바뀌었다"며, 학생들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헷갈릴 뿐 아니라 참전용사들이 잡상인처럼 내몰린 일을 봤다고도 했다. 현 정부의 경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예산을 '전 정부 사업'이라서 축소시켰단 지적이다. 보수·진보 갈등에 눈이 멀고, "Out of sight, Out of Mind"로 수요자와 정책이 유리됐다고 짚었다.

라미 현(본명 현효제) 사진작가는 비영리법인 '프로젝트-솔져' 차원에서 진행한 육군 제6사단 GOP 근무 장병 단체사진 촬영 당시 모습을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라미 현(본명 현효제) 사진작가는 비영리법인 '프로젝트-솔져' 차원에서 진행한 육군 제6사단 GOP 근무 장병 단체사진 촬영 당시 모습을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현 대표는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만났을 경우 자유와 인명을 지켜낸 자부심, 명함에도 담은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익히 듣는다고 했다.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 이후 35년 만에 올림픽 개최국이 된 한국을 보며 '잘 키운 자식'을 보듯 흡족한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반면 국군 참전용사에게선 나라를 두번 빼앗길 수 없다며 국토를 지켜낸 필사의 기억, 전후 홀대로 인한 설움이 주를 이뤘다.

현 대표는 "포장하고 옷만 입히면 바뀌는 게 아니다. '너만 그랬냐, 다 그랬잖아' 이 한마디로 되게 서럽다"며 "국군·미군·외국군 불문 가장 좋아하는 건, 그저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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