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선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겸임교수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21세기 한국 비전'에서 발표했던 유명한 메시지 중의 하나다. 디지털 통신과 인터넷으로 열려 있는 세계에서 오래 방치된 아날로그 시절의 법과 제도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안팎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의 해결은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고 발상을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사법부는 재판 실패에 관하여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매서운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사법부가 재판 실패의 원인을 내부적으로 '사건관리'에 따른 종합적인 요소로 인식하고 사건처리의 양, 사건처리의 질, 처리한 사건의 질 등을 분석하며 재판 지연에 따른 사법 실패의 원인과 해법을 찾기에 분주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의 실패가 사법부만의 책임일까? 과연 입법부와 행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재판의 과도한 지연은 정의와 공정성을 심각하게 무너뜨린다. 사건의 복잡성과 합법적인 증거능력 부족 현상은 재판에 어려움을 주고 판사들에게 업무 과중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증거능력은 지능적 범죄자의 증거 은닉과 훼손뿐만 아니라 법령과 과학적 수사방식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증거능력 부족은 수사와 재판에서 사건 처리 지연으로 나타나고, 사건 처리가 과도하게 지연되면 재판부는 물론 사건 당사자나 피해자에게 고통으로 이어진다. 억울한 범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를 못 밝히는 미제사건이 늘어나는 것은 심각한 법제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원의 제1심 형사합의 사건처리 통계를 보면, 피고인의 수를 기준으로 2014년 2만1423에서 2023년 2만1497건으로 접수가 비슷했는데도, 미제 건은 2014년 9237건에서 2023년 1만3233건으로 43% 이상 늘었다. 악성 미제는 법원이 비교적 쉽고 새로운 사건 위주로 처리하여 남은 미제가 어렵고 오래된 사건 위주로 계속 누적되어 나타났다.

사법부는 미제가 급증한 이유에 관하여 사건의 복잡성과 법원 업무 과중에 따른 쉬운 사건 위주 처리, 사법행정권자의 재판 지연에 관한 침묵 등 법관 윤리와 사법행정의 사건관리 상의 문제 등 사법부 내부만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진짜 해결책이 아니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닐까. 재판 실패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 자체적으로 사물관할 변경, 법관 증원, 예산 증액 등 힘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제사건이 줄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국민 부담도 가중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세 가지의 역사와 통계 사실을 제시하며 근본적 문제가 사법부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사법부 밖에 있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범죄 증명력이 높은 혐의자 소유 휴대폰에 대한 감청 수사가 중단되었다. 2005년 8월 법무부 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과거에 아날로그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운영한 사실이 있지만, 모두 폐기됐으며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효율적인 범죄 수사 및 신속한 재판이 어렵게 된 것이다.

둘째, 국회가 범죄 수사 장기화 해소를 위한 정부의 요구를 거절했다. 2014년 7월 법무부 장관이 국회 '세월호 특별위원회'에서 유병언 수사 장기화 지적에 관하여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은 가능하지만, 통신사가 감청장비를 설치하고 있지 않아 집행하지 못한다며 수사 효율성을 위해서는 휴대폰 감청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다.

셋째, 수사방식이 압수수색에 의존하는 경향에 따라 범행 증거력이 떨어지고 악성 미제가 급증하였다. 법원의 통계에 의하면 범죄 증거력이 약한 압수수색영장은 2012년 10만7499건에서 2021년 31만7509건으로 늘었으나, 범죄 증거력이 높은 감청 허가는 2012년 113건에서 2021년 3건으로 급감하였다. 제1심 형사재판의 2년 초과 악성 미제는 인원 기준으로 2014년 2025건에서 2023년 5084건으로 151% 폭증하였다.

결론적으로 주무 장관이 국회에 휴대폰 감청 필요성을 관철하지 못해 오늘날 재판 실패를 초래하였다는 판단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재판 실패의 원인은 사법부에만 있지 않고 국회와 정부에도 있다. 법원 내부의 조직적 개선은 물론 법원 밖에서 범죄 수사방식의 강화로 범죄 증거력을 높이는 종합적인 접근이 절실하다.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발상 전환과 입체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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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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