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받은 '일반의'가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전문의'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고강도 '수련'을 받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으로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서 수련받는 전공의는 정원 1만463명의 10.3%에 지나지 않는 1073명뿐이다. 벌써 47개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40%에서 20%로 낮추겠다는 보건복지부 목표치를 훌쩍 넘어서 버린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으로 수련병원을 떠났던 사직 전공의 9198명 중 절반이 넘는 4640명이 의료기관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다. 사직했던 전공의가 수련병원의 '수련 과정'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비현실적이고 폭압적인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서 '사직'했던 전공의가 속속 재취업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비정상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일반의'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현재 '일반의'의 수는 2분기 6624명에서 3분기 9471명으로 한 분기 사이에 43.0%나 증가했다. '종합병원'의 일반의는 689명으로 늘었고, '병원'의 일반의도 731명으로 늘어났다. 한 분기 사이에 무려 2.9배가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간호법까지 개정하면서 요란하게 들고 나왔던 'PA(진료보조)간호사' 제도가 무색해져 버린 것이다. 실제로 일부 상급종합병원의 경영 상태가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동네의 소규모 '의원'에서 일하는 일반의도 6331명으로 35.3%가 늘어났다.
전공의의 대규모 이탈에 놀란 보건복지부가 허겁지겁 밀어붙이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도 의대 증원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최고 수준의 인력과 시설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희귀 환자의 치료에 집중하고, 경미한 증상의 경증 환자는 일반 병·의원으로 유도한다는 취지는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조정으로 전공의 수련 기회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인턴 모집 정원 3200명 중 2100명이 상급종합병원의 몫이다. 결국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비중을 절반으로 줄이면 인턴 모집 정원도 1000명이나 줄어들게 된다. 의대 졸업생의 30%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 의대 입학정원이 늘어나면 수련 기회를 찾지 못한 '전공의 낭인'의 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필수·응급·지역 의료의 개선에 꼭 필요한 전문의는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의과대학 부속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무시했다. 의과대학이 전공의 수련을 포기하고, 중증·응급·희귀 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사회적 역할을 떠맡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의과대학은 처음부터 교육·수련을 목적으로 설립된 교육·수련기관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의료 개혁이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의사 양성에서 '전공의 수련'의 중요성을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이 40%나 된다는 사실은 40개 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뜻이다. 정부가 그동안 수련병원을 위한 투자를 외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입학정원을 줄이는 대신 의료정책을 혁명적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이 필요했다. 그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당시에 강조했던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 기반의 정책'에 어울리는 진정한 의료 개혁의 방향이었다.
10개월이나 계속되고 있는 의정 갈등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막장에 도달해 버렸다. 개문 발차한 반쪽짜리 '여·의·정협의체'에 대한 기대는 공허한 것이다. 무능한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이 감춰두고 있다는 '플랜B'도 의미가 없다. 세계 최고의 'K-의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무너져 버렸다. 이제 최악의 상황에 적응하는 절박한 지혜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환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