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한국은행이 28일 한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을 1%대(1.9%)로 낮췄다.

한은이 지난해 11월 처음 내놓은 2025년 성장률 전망치는 2.3%였지만, 올해 5월 2.1%로 하향 조정됐다. 직전 8월 전망 때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유지됐다. 그러나 경기 상황이 악화하고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커진 대외 불확실성에 성장률을 낮춘 것이다.

문제는 1%대 침체가 2026년(한은 1.8% 전망)까지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성장률 1%대는 우리의 잠재성장률(2%)을 밑도는 수치다. 성장률 통계를 집계한 1954년 이후 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1956년(0.6%), 1980년(-1.6%),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19 시기 2020년(-0.7%), 지난해(1.4%) 등 여섯번 뿐이다. 저성장 장기화가 우려되는 것이다.

한은은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 등의 압박에도 물가·환율·가계부채 악화 등을 이유로 금리인하에 있어 속도조절을 해왔다. 이런 한은이 이날 '깜짝' 기준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경기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저성장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경기 부양으로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연 3.25% 수준인 기준금리를 연 3.0%로 0.25%포인트(p) 인하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3년2개월 만에 피벗을 단행한 데 이어 두달 연속 인하에 나선 것이다. 한은이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6회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은은 이날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2026년 전망치는 이보다 낮은 1.8%로 예상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0.1%로 예상치인 0.5%를 크게 밑돌았다. 국내 경제를 견인한 수출 증가세가 중국 반도체의 위협,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압력 강화 등 영향에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와 이에 대한 중국 등 주요국의 대응으로 글로벌 무역갈등이 격화될 경우에도 국내 경제성장률이 내년에 0.2%p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교역이 급격히 위축되고 무역정책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 대선 결과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됐고 3분기에 수출 물량이 크게 낮아졌다. 경쟁국과의 수출 경쟁이 심화되고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고 봤다"면서 "미국의 신정부 정책 불확실성에 2026년 전망 변동성은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외 기관들도 한국의 내년 전망치를 잇따라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연례협의 보고서를 통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조정했다. 내년 전망치는 2.2%에서 2.0%로 낮췄다. IMF는 미국의 '트럼프 2기' 체제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될 경우 한국 경제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성장률 1%대 추락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6일 수출 둔화 등으로 인해 내년 한국 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전무)는 "(한국의) 수출 약화는 이미 올해 하반기 시작됐고,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내년에 출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해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봤다.

노무라증권과 JP모건은 이보다 낮은 1.7%로 전망했고, 바클레이즈와 씨티, HSBC 등도 1% 후반대 성장을 예상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내렸고, 내년은 2.0%로 예상했다.

문제는 한은이 전망한 1.9% 성장률도 불확실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창용 총재도 "앞으로 미국이 신정부에 들어서면서 어떤 정책을 어떤 순서로 쓰느냐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성장률 전망치가 내년 2월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2026년 전망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같은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 우려에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성장률을 낮게 제시한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관세 정책의 타이밍 문제"라며 1%대 성장률 고착과 관련해 "현재 제시하고 있는 잠재성장률 2%에서 크게 낮지 않은 숫자다. GDP나 GDP 갭(Gap)률 숫자에서 보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우려는 약간 과도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이날 한은의 결정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KBS 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에 출연해 "내수와 민생이 어려운 가운데 금리 인하가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도 내수와 민생 회복을 위해 정책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주형연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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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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