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배터리 관세 적극 활용 전년 대미 흑자 역대최대 기록 FTA 폐기·방위비 증액 우려 1기때 "공정" USMCA 정조준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5일(현지시간) 멕시코·캐나다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천명하면서 집권 1기를 뛰어넘는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당선 확정 단 2주 만에 전 세계에 내놓은 초고속 선전포고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날의 메시지는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직접 체결했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2기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해 스스로 깨겠다고 한 점에서, 주변국은 물론 국내 기업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미국에 불리하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에서 시작된 USMCA는 트럼프 정부 1기인 2018년 11월말 체결돼 2020년 1월 발효됐다. 발효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USMCA는 우리가 발효한 가장 공정하고, 가장 균형 잡혀있으며, 가장 유익한 무역 협정"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당시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20%의 보편 관세, 중국에 대한 60%의 관세, 중국 업체가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에 대한 100~200% 관세(최대 2000%까지 언급한 적도 있음) 등을 부과하겠다고 언급했고, 이를 곧바로 실천하겠다는 뜻을 이번에 피력했다. 또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여러차례 언급하면서, '관세 카드'만 있으면 기업들의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아가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150~200%의 관세를 부과해 대응하겠다"며 사실상 관세장벽을 대외 압박용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미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관세폭탄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간 한국 기업들은 향후 트럼프 2기 정부의 본격적인 대(對) 한국 관세장벽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긴장감이 최고도에 달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와 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미 수십조원을 미국에 직접 투자한 국내 기업들은 한층 더 수위를 높인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더 투자를 해야 할 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투자규모는 215억달러로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와 전기차 등 첨단산업의 자국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세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이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으로 꼽힌다. 대미 무역흑자가 지난해 444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만큼, 트럼프 2기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포함해 무역균형을 맞춰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에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오는 2026년부터 적용하기로 한미 양국이 합의한 것의 9배 수준인 연 100억달러(약 14조원)를 언급한 바 있어 추가 방위비 증액 요구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관세에 취약하다. 골드만삭스는 내년에 출범하는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내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예고된 관세가 USMCA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구상을 알리는 신호이자 미래 무역전쟁에 대한 예고편일 수 있다고 짚었다. 캐나다의 투자은행 TD증권의 알렉스 루는 "USMCA 협정은 기술적으로 2026년에만 재협상이 가능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오늘 관세 발표를 통해 캐나다, 멕시코와 조기에 갱신 절차를 시작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애덤 포즌 소장은 26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한국경제인협회와 공동 주최한 '격랑의 트럼프 2기와 한국의 생존 해법' 콘퍼런스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강경한 관세 정책이 한국에 곧바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포즌 소장은 "미국 관세 정책의 핵심 타깃은 중국과 멕시코"라면서 "다른 국가에는 협상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2.0 시대에는 한국이 대미 직접투자를 확대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