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특정 개인의 일탈 행위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몸의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건강을 잃는 것처럼 이를 방치할 경우 조직의 생산성이 악화되고 구성원의 소속감이 낮아져 결국 조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에 대한 대응 방식은 조직의 의사소통 및 조직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의사소통 구조가 원활하고 조직 문화가 건강하면 사전 예방이 잘 되어 있어 발생 빈도가 적을 것이고 설사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고 적정하게 처리될 것이다.
사업주는 본인은 물론 모든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행위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구제절차를 마련하며, 이를 취지에 맞게 운용되도록 관리할 책임을 진다. 구제절차의 주된 내용은 피해자의 신고 접수, 조사, 피해자 보호조치, 가해자에 대한 징계 조치 등이다. 2024년 4월 가결된 유럽연합(EU)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은 사업주의 책임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관련 판단은 쉽지 않다. 법원이 판단 요소로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지속된 기간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러한 기준을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주장하는 의도와 피해자의 반응 사이에 괴리가 클수록 그 판단은 더 어려워진다.
예컨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된 사안의 경우, 외견상으로는 상사의 지시가 업무 범위 내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업무의 적정한 범위를 벗어난 경우라면 보는 시각에 따라 가해자의 독특한 성격이나 의욕 과잉에 따른 부작용에 불과한 것인지, 징계가 필요한 사안인지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
괴롭힘에 비해 성희롱 판단은 조금 더 어려울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하였을 것인가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을 단순하고 명확한 법령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원천적인 한계가 있고, 관련 법리 역시 비교적 새로운 것이어서 명확한 유권해석 기준이 마련되기에 충분한 사례가 집적되지 않은 상황도 판단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일 것이다.
누구도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의 가해자가 되거나 이를 방치하는 사업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조직의 의사소통 구조와 조직문화 수준에 달려 있다. 근본적인 처방은 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구조와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직 운영을 책임지는 리더격인 임원들이 근로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때의 공감 능력이란 감성적인 것이라기보다 이해력에 가깝다. 나아가 리더들은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제도가 만들어진 철학적 배경, 근로자의 인격권이 갖는 의미,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판단 기준, 예방 조치와 구제절차의 운용 원리를 이해하는 지적 능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조직의 리더들이 보유한 공감 능력과 지적 능력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에 대한 사전 예방과 사후 구제 절차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것은 법적 책임을 넘어 조직의 생산성·지속가능성 및 구성원의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조직의 리더들이 이와 관련된 리더십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